경북 예천 청심대와 윤별동묘에 깃든 조선 초기 교육자의 삶
잦은 관직 이동에도 제자들의 존경 속에 오랜 기간 후학 양성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에 위치한 조선 초기 대학자 별동 윤상 선생의 불천위 사당인 도유형문화재 제 293호 윤별동묘. <장석원기자>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위축되면서 교권 회복이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법과 제도를 손보는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지만, 무너진 교실의 신뢰까지 되돌릴 수 있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아 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시선을 600여 년 전 조선 초기로 돌려본다.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에는 성균관을 16년간 이끈 별동 윤상(尹祥·1373~1455)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윤상은 높은 벼슬이나 권위에 기대지 않고 학문과 삶으로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조선 초기에는 관직 이동이 잦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성균관 교육을 맡았다. 나이가 들어 물러날 뜻을 밝히자 도승지 조서강이 세종에게 사직을 만류해 달라고 건의할 정도였다.
조서강은 윤상이 학문이 깊고 덕행이 뛰어나며 따르는 제자가 많다고 이유를 밝혔다. 윤상은 주역과 시문에 밝았지만 지식만 앞세우지 않았다. 학문에 임하는 태도와 제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스스로 본보기가 됐다.
이재완 예천박물관장은 "윤상 선생은 뛰어난 학문적 성취와 함께 교육자로서 갖춰야 할 덕행과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며 "오랜 기간 성균관 교육을 책임지고 많은 제자가 따랐다는 사실은 당시 윤상 선생의 교육자적 위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윤상의 교육관을 보여주는 이야기로는 '거위와 구슬' 설화가 전해진다. 거위가 구슬을 삼킨 사실을 알고도 거위가 죽임을 당할 것을 걱정해 도둑이라는 오해를 감수했고, 다음 날 배설물에서 구슬이 나오면서 누명을 벗었다는 내용이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 이야기가 오래 전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억울함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기다림으로 문제를 풀어낸 인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윤상이 남긴 학문적 전통은 예천 지역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예천과 용궁에서는 문과 급제자 120명이 나왔다. 예천이 공자와 맹자의 고향에 빗댄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리게 된 배경에도 오랜 교육과 학문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미호리에는 윤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청심대는 그가 제자들과 학문을 논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내성천과 주변 산수를 마주한 이곳은 자연을 교실처럼 활용했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에 위치한 조선 초기 대학자 별동 윤상 선생의 불천위 사당인 도유형문화재 제 293호 윤별동묘. <장석원기자>
윤별동묘도 마찬가지다. 윤상의 위패를 모신 이곳은 가운데 칸에 둥근기둥, 양쪽 칸에 네모기둥을 사용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이 반영된 구조다.
마을 주민들에게 윤상은 오래된 역사책 속 인물만은 아니다. 주민 송재봉씨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별동 선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며 "마을 주민들에게 윤상 선생과 그 유적은 대대로 이어져 온 자랑"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또 "윤상 선생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다"며 "청심대와 윤별동묘가 학생과 교사들이 직접 찾아와 교육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장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에 위치한 조선 초기 대학자 별동 윤상 선생의 불천위 사당인 도유형문화재 제 293호 윤별동묘. <장석원기자>
교육환경은 600년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바뀌었지만, 스승의 권위를 무엇이 만드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윤상의 권위는 직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학문을 닦고, 제자를 존중하며, 자신이 가르치는 가치를 삶으로 실천했다.
제자들의 신뢰와 존경은 그 뒤를 따랐다. 이재완 예천박물관장은 "별동 선생이 남긴 가치는 한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교권과 공교육의 역할을 고민하는 지금, 스승과 교육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정신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는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다만 교육의 출발점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성균관을 16년간 지키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별동 윤상. 600년 전 예천의 한 선비가 걸었던 길은 오늘날에도 스승의 조건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있다.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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