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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스포르찬도] 6·25전쟁 하면 떠오르는 노래, ‘전우야 잘 자라’

2026-07-07 06:00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6·25전쟁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단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로 시작하는 '전우야 잘 자라'이다. 이 노래는 한때 텔레비전, 라디오, 병영의 스피커에 이어 방방곡곡 골목에서도 들렸다.


'전우야 잘 자라'를 가장 많이 부른 것은 1970년대에 태어난 소녀들이다. 노래에 맞춰 양쪽에서 잡은 검은 고무줄 위로 폴짝폴짝 뛰는 놀이를 하면서 불렀다. 동네 소녀 놀이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노래가 등장한다니 지금 생각하면 기묘하지만, 그때는 너나 없이 흥얼거리던 유행곡이었다. '전우야 잘 자라' 말고도 '무찌르자 공산당 몇천만이냐'로 시작하는 '승리의 노래'도 있었다.


1983년 KBS가 기획제작한 6·25가 남긴 그때 그 노래. 6·25전쟁 33주년 기념음반이었는데 첫 머리에 실린 곡이 전우야 잘 자라이다.  <출처=국방홍보원>

1983년 KBS가 기획제작한 '6·25가 남긴 그때 그 노래'. 6·25전쟁 33주년 기념음반이었는데 첫 머리에 실린 곡이 '전우야 잘 자라'이다. <출처=국방홍보원>

'전우야 잘 자라'의 매력은 절절한 가사에 있다. 통상 1절만 알고 있는데 4절이 더 핍진하다.


<1절>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4절>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 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는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고 마침내 반격으로 전환하는 1950년 10월의 전황을 그리고 있다. 공격으로 전환하여 북진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함께 싸웠던 전우들의 시체이다. 수습하거나 추모할 시간은 없다. 병사들은 그저 명령에 따라 전진할 뿐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어 낙동강에 안녕을 고하면서 사무치는 것은 적에 대한 원한이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원수는 내가 갚을 테니 전우야 잘 자라.


4절의 배경은 38도선 돌파이다. 국군은 계속해서 전진한다. 가는 길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철모가 뒹굴고 있다. 손에 집어드니 흙이 후두둑하고 떨어진다. 흙 묻은 철모의 주인은 꽃 같은 나이에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밤인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전우가 별이 되어 나를 쳐다보고 있다.


1949년 박시춘이 설립한 럭키레코드 사옥 앞에서 사진을 찍은 유호(우측). 좌측은 신라의 달밤을 부른 가수 현인이다.  <출처=국가기록원>

1949년 박시춘이 설립한 럭키레코드 사옥 앞에서 사진을 찍은 유호(우측). 좌측은 '신라의 달밤'을 부른 가수 현인이다. <출처=국가기록원>

이 노래의 기획은 '낭랑 십팔세' '이별의 부산정거장' '럭키 서울' 등으로 유명한 국민작곡가 박시춘(1996년 작고)이 했다. 그가 전쟁 당시 정훈국에 소속되어 활동 중 떠올린 곡에 유호가 가사를 붙였다. 유호(2019년 작고)는 '신라의 달밤(1947)'을 지은 대중음악 작사가이다.


흥미롭게도 '전우야 잘 자라'는 한때 군의 금지곡이었다. 1951년에 육군본부에서 공연, 가창, 감상을 금지시켰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 같은 표현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북진해서 치고 올라갈 때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가사가 개선 행진곡처럼 씩씩하게 들렸을 테지만, 공산군에 밀려 후퇴할 때는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래까지 금지시킬 것은 없지 않았을까. 후퇴하는 전장의 병사들에게 유행가를 못 부르게 한 것이 더 사기를 떨어뜨리지는 않았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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