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931년 7월10일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태어났다. 그녀는 81세이던 2012년 마지막 소설집 '필사의 삶(for dear life)'을 출간하면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먼로는 자신의 고향인 온타리오 서남부 시골마을 휴론 지역의 생활상을 즐겨 소설 제재로 다루었다. 안톤 체호프에 버금갈 만큼 인간 내면의 갈등을 능숙하게 묘파한다고 평가받아온 그녀에게 2013년 노벨문학상이 주어졌다.
'필사의 삶'에는 단편 열넷이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쓴 '코리'는 그 중 한 편이다. 부잣집 상속녀 코리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그녀는 유부남 건축가 하워드와 불륜 관계가 된다. 가정부로 일하다 그만둔 릴리언이 반년마다 코리에게 폭로 협박 편지를 보내 돈을 뜯는다. 릴리언이 죽어 조문을 갔던 코리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릴리언은 코리를 협박한 적이 없었다. 편지는 하워드가 보낸 가짜였다. 하워드가 코리의 돈을 노리고 벌인 짓이었다. 코리는 모르는 척 한다. 하워드를 이해하고 용서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코리'에는 상대의 조악함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원만한 처세술로 여기는 인간심리가 낮은 목소리로 담겨있다.
2024년 5월 당시 지구촌 최고령자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는 장수비결의 하나로 '해로운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지내기'를 들었다. '코리'의 코리는 스페인 할머니의 세계관과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코리가 실존 인물이었을 경우 장수 여부가 궁금해진다.
'필사의 삶'의 다른 단편 '기차'는 남다른 주인공 잭을 통해 코리와 180도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다. 잭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린다. 그것을 참전용사다운 몸놀림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잭은 그저 역에 닿았을 때 싫은 사람과 만날까 걱정이 되어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일본에 닿기를'에는 또 다른 인간형이 나온다. 그레타의 남편은 아내의 생각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레타는 무미한 일상에 지쳐있던 중 어떤 파티에서 유부남 기자 해리스를 만난다. 그녀는 해리스가 있는 토론토로 찾아간다. 마지막에 그녀는 일본으로 떠나는데 그 순간 딸의 손을 놓는다. 새로운 터전을 굳이 일본으로 정한 필연의 까닭은 없다.
아무튼 그레타는 상식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잭도 코리도 건강한 상식 수준은 아니다. 작가는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그녀의 작품에는 모레라 할머니가 직설로 표현한 뜻이 비유와 상징을 통해 에둘러 드러나 있다. 그러니까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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