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현호 (주)콰타드림랩 대표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교육과 상담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선행학습, 진로 체험, 여행과 캠프까지 답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권하는 한 가지가 있다. 마음껏 책을 읽는 여름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책이라는 벗을 사귀는 방학 말이다.
지난해 이 지면에서 독서가 뇌를 다시 설계하는 힘과 여름방학의 리셋 효과를 이야기한 바 있다. 올여름에는 두 가지를 묶어 가족 독서를 제안하고 싶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해놓고 부모는 빠지는 방식이 아니다. 온 가족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저마다 고른 책을 펼치는 것이다. 같은 책일 필요는 없다.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독서 교육이다. 아이는 어른의 말보다 어른이 시간을 쓰는 방식을 더 오래 기억한다.
요즘은 "AI가 몇 초 만에 내용을 요약해주는데 굳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합니까?"라는 질문도 듣는다. 그러나 독서의 목적은 정보를 빨리 얻는 데만 있지 않다. AI가 빠르게 답을 내놓을수록, 독서는 하나의 질문 곁에 오래 머무는 힘을 길러준다. 요약은 결과를 건네지만 읽기는 생각의 과정을 통과하게 한다. 문장 앞에서 멈추고, 동의하거나 반박하고, 내 경험과 연결하는 동안 판단의 기준이 생긴다. 정보가 넘칠수록 귀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려내는 힘이다. 독서는 AI와 경쟁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AI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기초 체력에 가깝다.
방학은 결국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가족은 그 시간을 어떻게 함께 쓸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김요한 작가의 '시간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이 글의 주제와 맞닿아 있었다. 책장을 덮고 남은 것은 시간이 곧 선택이란 깨달음이었다.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하루의 빈칸을 빽빽하게 채우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내 시간을 내어줄지 스스로 정하는 일이다.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곧 삶의 일부를 건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가족 독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루 30분처럼 모두가 지킬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휴대전화를 잠시 내려놓고,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 된다. 가까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각자 한 권씩 고르는 일을 방학의 첫 일정으로 삼아도 좋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음에 남은 문장 하나를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권수나 분량이 아니라 지속성과 대화다. "몇 권 읽었니?"보다 "어떤 단어와 문장에 오래 머물렀니?"라고 묻는 가정에서 독서는 숙제가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문화가 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독서 계획이 또 하나의 방학 과제가 되는 일이다. 정해진 목록을 주고 독후감부터 요구하면 책은 곧 평가의 대상이 된다. 선택권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부모도 한 명의 독자로 곁에 앉아야 한다. 한 권을 다 읽지 못해도 괜찮다. 단 한 문장이라도 가족의 대화를 열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했다면 그 독서는 이미 충분히 깊다. 시간이 삶의 무기가 되는 순간은 더 많은 일을 해냈을 때가 아니라, 무엇에 시간을 내어줄지 스스로 선택했을 때다. 이번 여름, 그 시간의 한가운데 책 한 권을 놓아보자. 아이와 부모가 한 공간에서 각자의 책을 읽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이번 방학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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