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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窓] ‘사법 잣대’에 무너지는 필수의료

2026-07-17 06:00
박종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대구파티마병원 신경과 과장

박종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대구파티마병원 신경과 과장

의료는 과학이지만 동시에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영역이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의 상태와 기저질환, 치료 시기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응급의료와 외상, 분만, 신생아중환자실 같은 필수의료는 제한된 시간과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의사는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만, 그 판단이 언제나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의료행위를 결과 중심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사법의 잣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의료과실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명백한 과실과 의료의 본질적인 불확실성까지 구분하지 못한 채 치료 결과만으로 형사책임까지 묻는다면 의료현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인이 민사소송과 형사고발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현실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법적 리스크는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응급실에서는 수분 안에 생사를 결정해야 하고, 외상센터에서는 충분한 검사보다 신속한 수술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 분만실에서는 산모와 태아를 동시에 살리기 위한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하며,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몸무게 1㎏도 되지 않는 미숙아를 밤낮없이 돌본다. 가장 위험한 환자를 치료할수록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 위험과 책임은 대부분 의료인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최근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사태는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북 지역 고위험 신생아 진료를 책임져온 전담 교수가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환경 끝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병원은 파격적인 처우를 내걸고 후임을 찾았지만 지원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역의 마지막 안전망이던 신생아중환자실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문제는 한 명의 교수가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대신할 의사가 없다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의 해법으로 의사 수 확대를 이야기한다. 물론 장기적인 의료인력 확충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외면한 채 숫자만 늘려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뿐이다. 높은 업무 강도와 충분하지 못한 보상, 그리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조차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대로라면 새롭게 배출되는 의사들 역시 필수의료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를 더 양성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사가 남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의사의 숫자보다 먼저 제도를 바꿔야 한다. 응급의료와 분만, 외상처럼 본질적으로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의료행위는 일반진료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명백한 과실은 엄정하게 책임을 묻되,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는 국가가 책임을 분담하고 의료의 특수성을 반영한 합리적인 법적 보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의료인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국민이 언제든 필수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필수의료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던 의료인들이 하나둘 현장을 떠날 때 조금씩 무너진다. 의료를 사법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사회에서는 가장 위중한 환자를 책임질 의사도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필수의료를 지키는 일은 의사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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