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공인회계사
국회에서 회계기본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논의의 출발점은 공공기관마다 회계용어와 포함 범위, 재무제표 작성 방식이 달라 국민이 국가 재정을 객관적으로 비교·평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일부에서 기관별 특수성을 무시한 획일화라는 지적과 특정 전문 직역의 권한 확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공공기관과 비영리법인, 영리기업은 목적과 운영 방식이 다르며 그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재정을 과연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상품을 비교할 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가격 표시 방식이 모두 다르고 품질 기준도 제각각이라면 소비자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국가 재정도 마찬가지다. 기관마다 회계기준이 다르다면 재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부채'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포함 범위가 다르고, 같은 재무제표를 말하면서도 작성 원칙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숫자를 보고도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회계기본법에 대한 반대 논리 가운데 하나는 공통 기준이 다양한 조직의 특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통 기준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공정하게 비교하기 위한 토대다. 교통법규가 그렇다. 모든 차량은 같은 법규를 따르지만, 승용차와 버스, 구급차라는 차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차이를 존중하려면 먼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기관별 특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객관적인 비교도 가능해진다. 회계기본법은 기관별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공공부문의 재정을 공통의 기준 아래에서 비교할 수 있게 하는 틀이다.
또 다른 반대 논리는 특정 직역의 권한 확대 가능성이다. 직역의 문제와 기준의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회계기본법 논의를 직역의 이해관계만으로 바라본다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공정한 제도를 판단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개인적 이해관계를 가린 상태에서,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유리한 규칙이 아닌 구성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 위에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계기본법도 다르지 않다. 만약 우리가 회계사인지 세무사인지, 공무원인지, 아니면 일반 시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공 회계 제도를 설계한다면 어떤 기준을 선택하게 될까. 아마도 특정 집단의 이해를 앞세운 기준보다 누구나 이해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먼저 선택할 것이다.
회계기본법의 철학적 의미가 여기에 있다. 회계기본법의 의미는 국민이 국가 재정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조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민이 정책을 평가하고 권력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를 위해 재정 정보도 국민이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위에서 작성되어야 한다.
회계는 숫자의 기술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공 영역의 회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국가를 읽는 공통의 언어다. 그래서 회계기본법 논쟁의 본질은 직역의 승패에 있지 않다. 국민 모두 일관된 기준 위에서 국가 재정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 기준 위에서 시작된다. 기준이 흔들리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같은 기준 없이 같은 국가를 이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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