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개 수작업 시간과 싸움…선비 의관의 정수
“혼자서 전 공정…한 점 만드는 데 꼬박 3개월
새마을운동 이후 양복 도입…갓 공방 사라져”
■출향인사를 찾아서/ 예천 출신 국가무형유산 갓일 입자장 보유자
예천 출신의 박창영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입자장 보유자가 전통 갓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예천' 지역은 예로부터 지조와 충절을 실천한 '영남 선비들의 고장'이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만 120여 명을 배출했을 정도로 학문의 토양이 탄탄한 문향이었으며, 안동·영주와 더불어 영남 유림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특히 선비 의관의 정수인 '갓' 제작으로 조선 시대부터 전국적 명성을 날렸다. 예천 갓 생산의 본거지인 '돌티마을' 출신으로 국가무형유산 갓일 입자장(笠子匠) 보유자인 박창영 선생은 "어렸을 때 고향마을에는 좋은 갓을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항상 북적였다. 어찌나 융성했던지 오죽하면 '우리 마을 개들은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갓,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
전통 갓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제작과정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는 집념의 산물이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말총을 정교하게 엮고, 대나무를 삶아 쪼개고, 아교칠과 먹칠, 옻칠을 반복한다. 전통 갓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공정을 거치게 되는데, 양태일 24과정, 총모자일 17과정, 입자일 10과정 등 총 51개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개의 갓이 완성된다.
"예전 갓방에서는 분야별 전문가 4~6명이 한 조를 이뤄 갓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더 이상 갓을 찾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저 혼자서 모든 과정을 만드는데, 대략 2~3달 꼬박 작업을 하면 1개의 갓을 만들 수 있어요."
선생은 증조부 때부터 갓을 만들어온 전통 가문 출신이다. 고향마을 갓방의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숙련된 전문가들이 초고난도의 작업에 집중하면서 팽팽함이 감돌았다. 간혹 대나무를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만 들릴 뿐 숨소리마저 멈춘 듯 고요했다. 서늘한 정적과 묘한 긴장이 교차하는 분위기에서 박 보유자의 청춘이 지나갔다.
"고향인 예천 돌티마을(현 천북동)은 전국적인 갓 생산지로 유명했어요. 마을의 80여 가구 중 절반 이상이 '갓방'을 운영할 정도로 대표적인 갓 마을이었지요. 아버지와 친척분들을 따라 저도 자연스럽게 갓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박창영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입자장 보유자가 만든 다양한 형태의 갓./김은경 기자
◇새마을운동 이후 쇠락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갓방의 풍경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물결과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초가집이 허물어지고 양복이 새로운 노멀로 자리잡으면서 갓을 쓰는 사람들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전국의 상인들로 웅성거리던 예천의 갓방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박 보유자도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옛날에는 여러 사람이 나눠 하던 일을 이제는 혼자 다 해야 하니, 갓 하나를 제대로 복원하고 완성하는 데 최소 두세 달, 길게는 6개월이 걸립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아교 작업도 못 해요. 습도가 높으면 아교가 녹아내려 이튿날 보면 다 떨어져 있거든요. 에어컨이 없던 옛날에는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밤을 새우는 게 일과였습니다. 10월 상달 같이 제일 바쁠 때는 꼬박 밤을 새우며 대나무와 씨름을 했지요."
한 자리에 앉아 8시간, 때로는 밤을 새우며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는 작업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정신 수양에 가깝다.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와도 그는 칼을 놓지 않았다.
"주변에서 직업병이 없냐고, 성질 급한 사람은 못 하겠다고들 합디다. 맞아요. 이건 정신 수양이나 다름없습니다. 작업할 때는 오직 작품을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지요. 잡념이 생기는 순간 살이 부러지거나 선이 틀어져 버리니까요."
박창영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입자장 보유자의 단정하게 정돈된 작업실. /김은경 기자
◇'Oh my gat' 세계적 열풍
몇 해 전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이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의 모자 '갓'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Oh My God'을 비틀어 'Oh My GAT'이라는 패러디 영상과 밈이 널리 유행했다. 신분에 따라 크기와 문양 등이 달라지는 조선의 갓이 서양의 시청자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은 더 이상 갓을 찾지 않지만, 여전히 그를 찾는 곳은 있다. 드라마 제작사, 국악인, 유림 등이다. 이름만 얘기하면 알 만한 유명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서 그의 갓을 착용하고 늠름한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박 보유자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대중이 환호하는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안타깝게도 화면에 나오거나 공개 행사에 쓰이는 갓의 태반이 나일론으로 대량 생산한 것들이다. 심지어 국가적 행사에서조차 예산이 없다거나 쓰기 편하다는 이유로 모조품을 씌워놓고 '한류'라고 자랑을 한다. 전문가가 보면 시대상과도 맞지 않고, 형태도 왜곡된 경우가 적지 않다.
"현대화할 게 따로 있고,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갓은 대나무를 실처럼 얇게 쪼개어 사람 손으로 일일이 엮고, 도넛 모양의 평면을 인두로 지져가며 입체적인 곡선을 만들어내는 지극히 섬세한 공예품입니다. 옛날 조선 시대에도 갓 하나는 선비의 신체와 같아서 훼손되면 기워 쓰고 닦아 쓸 만큼 귀한 예술품이었어요."
◇"한국, 모자의 나라" 감탄
박 보유자에게 '갓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한국인의 기개와 정돈된 아름다움'을 꼽았다.
"서양인들이나 현대인들은 갓을 야구모자처럼 눌러쓰는 모자로 생각하지만, 갓은 머리 위에 살짝 '얹어 쓰는' 것입니다. 양반들이 도포만 입고 나가면 완성이 안 돼요. 그 위에 갓을 딱 갖춰 써야만 비로소 한국 고유의 풍채와 낭만이 살아납니다. 옛날 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보고 '모자의 나라'라고 감탄했던 이유도, 갓이 만들어내는 그 독특하고 우아한 실루엣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백색의 선비 정신이,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작업실 한 편에는 갓 작품이 몇 점 전시돼 있다. 그중에는 대기업에서 판매를 요청했지만 거절하고 소장한 것도 있다. 돈이 아닌 가치를 좇는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진짜 조선의 갓'이 무엇인지 후손에 보여주기 위해 남겨둔 역사적 사료다.
"팔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팔고 나면 다시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 자신이 없었거든요. 우리의 갓 문화가 끊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를 이어 이 길로 뛰어든 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은경
오래 침묵하고 말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