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경북 안동시 성곡동 한 골목에서 모녀가 사다리에 앉아 뭔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홍성광 사진가 제공>
1980년대 초 경북 안동시 성곡동의 어느 골목길 모습이다.
흙먼지가 날리는 거친 돌길 위, 낡은 기와를 얹은 집 모퉁이에 어머니와 어린 딸이 나란히 앉아 있다. 어머니와 딸은 보따리를 쥔 채 투박한 나무 사다리에 앉아 뭔가를 기다리는 듯 아련하게 바라보는 표정이다.
벽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하얗게 속살을 드러냈고, 그 위에는 서민들의 거친 삶을 대변하는 벽보들이 덕지덕지 덧방으로 붙어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집 외벽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미용과 피부미용 수강생 모집, 영주중장비학원, 자동차정비, 중장비 운전 등 생업과 기술 습득을 위한 학원 전단지 등이 붙어 있다.
빛바랜 전단지 속 글자들은 기술이라도 배워 서울로, 혹은 도시로 나가 살아보려는 지역 젊은이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떨어져 나간 벽보 자국과 어지럽게 얽힌 낙서들이 이 골목을 거쳐 간 수많은 발걸음을 증명하고 있다. 치열하고 정겨웠던 그 시대의 삶의 흔적이 담벼락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하다.
지금은 어떤가. 현대의 현수막과 스티커 등 부착물은 도시의 미관과 안전, 시각적 공해의 대상으로 여긴다. 지정된 게시대와 허가받은 장소가 아닌 곳에 부착물을 붙이는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1980년대의 벽보가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이웃들의 투박한 메시지였다면, 현대의 부착물은 도시 환경과 안전 관리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현대도시 문제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안동댐 건설 등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의 성곡동은 급변하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져간 우리 고향의 옛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어르신들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사람들의 정이 오가고, 서로를 보듬고, 마음을 나누던 시절이 그립다고들 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도 지금이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여기고, 각자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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