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소양(隔靴搔癢)은 가죽신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뜻으로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엉뚱한 일만 하는 것을 보고 쓰는 말이다. 민간이나 기업이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와 공사나 물품구매, 용역 계약을 체결할 때는 '청렴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이 계약 과정에서 뇌물·향응 제공·부당한 청탁 등의 비리가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청렴 서약서 제출 및 준수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일부 분야의 자원봉사자들에게까지 이 청렴서약서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 자원봉사자는 정규직 공무원이 아님은 물론 계약직도 일용직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를 할 때마다 청렴서약서에 서명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공직과 민간의 관계에서 공직자는 갑이고, 민간이나 기업·자원봉사자는 을이다. 애당초 청렴은 갑의 일이지 을에게 서약하게 할 일이 아니다. 청렴은 전적으로 공직자의 의지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에게 청렴서약을 시키는 데에는 공직사회를 향한 비난을 을에게 전가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는 듯 보인다. 공직의 큰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국민들에게 보여줄 어떤 대책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됐는데 하다하다 을을 내세우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 대책은 땜질용일 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공직자들도 알고 국민들도 안다.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먼 대책을 즐기고 있으니 영천시 7급 직원의 수십억 공금횡령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어떻게 230여 차례나 전산을 조작하여 돈을 빼내는 것을 7개월간이나 모를 수 있을까?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지 않고 땜질 처방만 내놓은 결과일 게다.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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