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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순의 문명산책] 물과 바람을 읽는 문명

2026-07-24 06:00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폭염이 일상이 됐다. 해마다 여름은 더 길어지고 더 뜨거워진다. 더위는 계절이 아니라 기후의 새로운 질서가 됐다. 현대 문명은 다행히 전기와 에어컨으로 실내를 시원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그 안락함 뒤에는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냉방 수요가 늘어날수록 지구는 더 뜨거워지는 역설 속에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인류는 언제나 더위를 힘으로만 이겨온 것은 아니다. 사막이라는 가장 혹독한 더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연과 맞서기보다 자연을 읽는 법을 택했다. 그들이 읽은 것은 물의 길과 바람의 길이었다.


물의 길은 이란에서는 카나트, 오만에서는 팔라즈, 중앙아시아와 중국 신장에서는 카레즈라 불리는 지하 수로이다. 산기슭의 지하수를 자연경사만으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까지 흘려보낸다. 물은 땅속으로 흘러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거의 증발하지 않는다. 이 기술은 사막에 도시를 세우고 농업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물을 억지로 끌어오지 않았다. 물이 스스로 흐르는 길을 먼저 배웠다.


바람의 길은 바드기르, 바르질, 혹은 말카프라 불리는 바람탑을 통해 열린다. 높은 곳의 시원한 공기를 실내로 끌어들이고 뜨거운 공기는 위로 내보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람탑과 지하 수로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바람은 지하 수로의 차가운 물 위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식고, 그 공기가 다시 실내로 들어온다. 조건에 따라 실내 온도를 최대 10~20℃ 가까이 낮출 수 있는, 전기도 에어컨도 필요 없는 자연 냉방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발명은 단순한 건축기술이 아니다. 그 안에는 문명의 태도가 담겨 있다. 현대 문명이 자연을 통제하려 했다면, 사막 문명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활용했다. 자연을 지배하기보다 자연과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오래된 지혜는 오늘날 가장 앞선 친환경 건축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유럽에서 발전한 패시브 하우스는 건물을 하나의 거대한 보온병처럼 설계해 외부의 열은 막고 내부의 쾌적함은 오래 유지한다. 그것 역시 자연과 싸우는 기술이 아니라, 열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이제 전 세계 지속가능한 건축의 기준이 되고 있다.


두바이는 사막 위에 세운 성장의 도시다. 그곳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마스다르 시티는 사막으로부터 다시 배우려는 공존의 도시다. 두바이가 '얼마나 높이 지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면, 마스다르 시티는 '얼마나 자연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다. 물길과 바람길 가운데 좁은 골목을 내어 그늘을 만들고, 태양광 발전을 결합해 지속가능한 생태 도시를 실험하고 있다. 첨단기술의 미래도시이면서도, 그 출발점은 수천 년 전 사막 문명의 지혜이다. 이제 문명은 도시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문명의 진보는 자연을 정복하는 역사만은 아니었다. 물의 길을 읽고, 바람의 길을 읽고, 열의 길을 읽어 마침내 도시의 에너지 흐름까지 읽어내는 과정이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지속가능성은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자연의 언어를 읽고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자연을 이기려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그것이 사막이 인류에게 남긴 가장 오래된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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