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데이터센터 내준 채 로봇 출혈경쟁
노후 제조업 기반 AX 전략도 정확히 겹쳐
정부 ‘5극 3특’ 권하지만 협력 길은 막아
지원기관 소통 시급…칸막이부터 걷어내야
대구와 경북의 미래산업이 충돌하고 있다. 대구지역 대표 로봇기업인 HD현대로보틱스 제조 현장의 모습. <영남일보DB>
대구시와 경북도의 미래전략이 충돌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공모에서 광역경제권인 대구와 경북이 맞붙는 상황이 연출되면서다. 반도체·AI데이터센터 등 주요 국가전략산업은 타 권역에 내준 채 남은 미래 먹거리를 놓고 출혈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경쟁보다 협력으로 위기에 빠진 대구경북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휴머노이드 패권 놓고 맞대결
대구시와 경북도는 산업통상자원부 '휴머노이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대구는 이번 공모가 절실하다. 반도체·AI데이터센터 등 국가전략산업의 '대구 패싱'이 현실화한 가운데, 경쟁력을 인정받는 로봇 분야에 올인한다는 전략이다. 관련 인프라도 우수하다. 전국 유일 로봇산업 진흥기관인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있고, 국가서비스 로봇 실증 거점인 국가로봇테스트필드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휴머노이드·AI로봇 등 첨단로봇 산업 생태계 구축도 앞서 있다는 평가다. 이번 특화단지 지정으로 첨단로봇 가치 사슬 생태계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유승열 계명대 교수(로봇공학전공)는 "입지나 환경적으로 대구가 앞서 있다. 관련 기업도 많고, 경북대·계명대 등 인재 수급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후발주자 경북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반세기가량 축적된 구미의 정밀제조 노하우와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등 포항의 실증 인프라를 연결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구미에 총 19조원 규모 로봇산업 투자를 결정하면서 경쟁이 더욱 심화됐다.
대구지역 대표 제조업 집적지인 성서산업단지 전경. <영남일보DB>
◆ 제조업 AX 전략도 겹치는 대구경북
대구와 경북은 AI 전략도 유사하다. 노후 제조업 기반의 AX(AI 전환) 공모에서 대구와 경북은 번번이 부딪히고 있다. 섬유·자동차 등 전통산업 기반 산업구조와 이를 기반으로 한 미래 전략까지 겹치는 데서 기인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지역본부는 최근 성서산업단지를 로봇 특화 AX 거점으로 구축하는 'AX 실증산단' 공모에서 경북 구미·포항, 충북 청주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본부는 2029년까지 252억원을 들여 전국 최대 차부품사 집적지인 성서산단을 로봇 특화 AX 확산 및 AI로봇 생태계 선도 거점으로 구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락하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작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역특화 제조데이터 활성화 사업(제조AI센터)' 공모에선 대구TP가 경북도를 누르고 120억원 규모 제조AI센터를 최종 유치했다. 이 사업은 중소 제조기업이 AI와 제조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거점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로, 대구를 비롯해 울산·충북 등 3개 지역이 선정됐다.
대구시 산하기관인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DIP)과 경북도 산하기관인 경북IT융합산업기술원(GITC)도 '2026년 소형데이터센터 기반 AI산업 성장 지원사업'에서 맞붙었다. 이 사업은 지역 특화산업 육성과 중소기업의 AI 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프로젝트다. 제조·의료·모빌리티 등 지역별 특화분야에 맞춘 민간 소형 AI 데이터센터(AIDC) 발굴이 목표로 GITC가 선정됐고, DIP는 탈락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소재·부품 기업들이 들어서 있는 구미 공단 전경.
◆각자도생 권하는 정부…'5극 3특' 자기모순
대구경북의 '각자도생(各自圖生)' 이면에는 정부의 자기모순이 있다. 국가균형발전전략으로 '5극 3특'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미래산업 공모에는 권역별 상생협력의 길을 막아놨다. 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대다수 미래 신산업 공모는 광역단체별로 신청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류동현 대구시 AI정책과장은 "극히 일부를 제외한 웬만한 공모는 광역단체별 신청을 받는다. 만약 함께 하더라도 매칭비 조율 문제로 협력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DIP 관계자도 "정부가 권역별로 목적사업을 뿌리는 경우가 많아 권역별 기관끼리 공모 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송기륭 대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반도체로 예를 들면 대구에 설계기반이 있고, 구미에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형성됐다. 협력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라며 "정부가 5극 3특을 원한다면 공모나 지정사업에 권역별로 할 수 있게끔 제도적 허용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원기관 칸막이부터 걷어내야
정부 정책도 아쉽지만, 내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질적으로 정부 공모에 대응하고 신산업을 기획하는 TP의 역량 부족을 지적하는 쓴소리가 잇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대학 교수는 "TP가 산업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능이 약화됐다. 기획단계에서 대구TP와 경북TP가 소통·협력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 되는 걸로 안다"면서 "AI·로봇 등 지원분야가 전문화되면서 인력 수준도 올라가야 하는데, 현재 TP 전문성에 의문부호가 붙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지자체 산하기관의 칸막이를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종태 대경ICT산업협회장은 "전국에서 초광역권 경제를 표방하지만, 인근 지역인 대구경북권 기업지원기관의 사업에도 교차지원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광역단체장 합의만 있으면 되는 부분"이라며 "지원기관의 칸막이를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하면 초광역권 경제 통합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대구시청 경제부서와 산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도 끝까지 듣겠습니다.
이동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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