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 일구던 깊은 산골, 동학 사상의 핵심 ‘인내천’ 싹틔운 역사적 현장
“상수원 보호구역 묶여 방치... 탄신 200주년 앞두고 체계적 보존 시급”
포항시 북구 신광면 검등골 '해월 최시형 유허지'. <포항시 제공>
짙은 녹음이 우거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마북리 산속 깊은 곳, 저수지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폐허가 나타난다. 수풀 사이로 듬성듬성 남은 축대와 집터 흔적만이 과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얼핏 보면 그저 버려진 산비탈 같지만, 이곳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 중 하나가 싹튼 역사적 현장이자 최근 포항시가 향토기념물로 지정한 '해월 최시형 유허지'다.
◆ 화전 농사짓던 청년, 동학의 2대 교주로 거듭나다
해월 최시형(1827~1898)이 33세가 되던 1859년(철종 10년), 생활이 어려워진 그는 신광면 마북리 깊은 산골짜기 '검등골'로 이주해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1861년 경주 용담에서 수운 최제우가 가르침을 편다는 소문을 듣고 80여 리 상당의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 동학에 입도했다. 이후 해월은 검등골과 경주를 수시로 오가며 가르침을 구했고, 집 앞 계곡 찬물에 몸을 담근 채 깨달음을 향한 혹독한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훗날 동학 교단의 후계자로 자리 잡으며 많은 활동을 펼친 해월에게 있어 이곳 검등골은 그의 초기 생애와 사상이 다져진 곳이라 할 수 있다.
해월 최시형 옛집터를 알리는 표지판. <포항시 제공>
◆ 신분 차별 철폐... 만민 평등의 첫 법설이 울려 퍼진 골짜기
검등골 유허지가 지니는 가장 큰 사상적 의미는 바로 만민 평등 사상의 발원지라는 점이다. 1864년(고종 1년) 1대 교주 최제우가 '좌도난정'의 명목으로 처형당하자, 대대적인 탄압을 피해 해월 역시 옛터를 떠나 태백산맥 깊숙이 몸을 숨겨야 했다. 긴 도피 생활 끝에 1865년 10월 28일 다시 검등골을 찾은 그는 모여든 도인들에게 첫 법설을 펼쳤다. 해월은 "양반과 상놈을 차별하는 것이 나라를 망치는 것이며, 적자와 서자를 구별하는 것이 집안을 망치는 일"이라며 신분과 계급의 철폐를 천명했다. '사람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는 평등에 대한 가르침은 훗날 동학사상의 핵심인 '인내천(人乃天)'의 뼈대가 됐다.
◆ 상수원 보호구역에 묶여 방치된 160년 전 성지
이토록 종교·사상사적 측면과 지역 문화적 가치가 충분한 공간임에도, 유허지가 처한 현실은 냉혹하다. 1970년대 정부의 소개령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이곳은 잊힌 폐허로 변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진입로 입구에는 저수지가 생겨 상수원 환경보호를 이유로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역사적 발자취를 찾아온 방문객들이 아쉬움 속에 발길을 되돌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해월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서너 채의 집터와 축대, 논밭의 흔적 등이 세월의 풍파 속에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검등골 유허지 위치도. <포항시 제공>
◆ 향토기념물 지정 넘어 탄신 200주년에 걸맞은 사업 서둘러야
다행스럽게도 포항시는 지난 7월 3일 제2차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곳을 포항시 향토기념물로 지정 고시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장소가 뒤늦게나마 지역 사회 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념물 지정 고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2027년은 해월 최시형 선생의 탄신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 113개 동학 관련 단체들이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포항시가 산업 도시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도시로서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유허지 일대에 체험 공간과 전시시설을 갖추고 진입로를 정비하는 등 실질적인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160여 년 전 척박한 산골짜기에서 외쳤던 만민 평등의 목소리가 온전히 후세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와 관심이 시급한 때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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