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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빛 뒤에 남은 그림자…수성아트피아 최은철 개인전 ‘그림자 위에 그림자’

2026-07-25 16:51

AI 광고·신용카드·재개발 현장 등으로 본 물질문명
사라지는 공간과 새로 생겨나는 도시의 순환

지난 16일 수성아트피아 전시장에서 만난 최은철 작가는 이번 전시는 인간은 왜 물질을 떠나 살아갈 수 없는가, 새로운 문명은 무엇을 없애고 그 위에 무엇을 세우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지난 16일 수성아트피아 전시장에서 만난 최은철 작가는 "이번 전시는 인간은 왜 물질을 떠나 살아갈 수 없는가, 새로운 문명은 무엇을 없애고 그 위에 무엇을 세우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영상 속 인물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매듭과 씨름한다. 아무리 애써도 매듭은 풀리지 않고, 화면에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슬로건 'Just Do It'이 등장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바구니에 담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순식간에 시든다.


23개의 짧은 영상으로 구성된 최은철 작가의 영상 작품 'Dear Customer'는 사람과 사랑, 행복, 도전 등 기업 광고가 내세우는 인본주의적 언어가 결국 소비를 유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수성아트피아가 '수성스페셜아티스트'로 선정한 최은철 작가의 개인전 '그림자 위에 그림자'를 오는 8월22일까지 연다.


최 작가는 회화와 사진, 조형 설치, 미디어 작업을 넘나들며 급속한 개발과 재편을 거듭하는 현대 도시의 시간성과 정체성을 탐구해 왔다.


지난 16일 수성아트피아 전시실에서 만난 최 작가는 "이번 전시는 '장소'와 반대되는 개념인 '비장소'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비장소는 마르크 오제가 제시한 개념으로 대형마트·고속도로 휴게소·철도역·도심의 상업 공간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서로 소통하지 않고 이동과 소비가 중심이 되는 공간을 뜻한다.


최은철 작. <수성아트피아 제공>

최은철 작. <수성아트피아 제공>

최 작가는 "비장소를 조사하다 보니 건물 외벽을 덮고 있는 디지털 사이니지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며 "광고 이미지가 빠르게 AI로 대체되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고민했고, 역으로 AI를 이용해 광고를 만들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같은 제목의 설치 작품 'Dear Customer'가 관람객을 맞는다. 신용카드 1천60여 장을 모자이크처럼 배열해 하나의 대형 이미지를 만들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화에 고층 건물과 고무장갑, 조각상, 배관 등 여러 일상 사물을 더해 물질은 넘쳐나지만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 현대 도시를 표현했다.


최 작가는 "신용카드는 소비와 신용을 상징하는 동시에 모바일·QR 결제 확산으로 언젠가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과도기적 사물"이라며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통해 소비, 신용등급, 사회적 계층, 사물의 수명과 미래의 유물이라는 문제를 함께 드러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도심 고층 건물의 유리 외벽에 비친 풍경을 옮긴 대형 회화도 눈길을 끈다. 주변 건물과 하늘, 광고판이 유리 표면에서 굴절되는 모습을 촬영한 뒤 여섯 개의 캔버스에 옮겼다. 캔버스 뒤에는 공사가 중단된 건물의 녹슨 철골을 닮은 구조물을 설치했다. 실제로는 목재에 부식 페인트를 입힌 것으로, 매끄러운 유리 건축물과 거친 공사 현장의 물성을 대비시켰다.


최은철 작. <수성아트피아 제공>

최은철 작. <수성아트피아 제공>

최 작가는 "건물 자체는 구상적이지만 표면에 비친 것들은 추상적으로 변한다"며 "유리 건축물이 늘어나면 도시의 고유한 모습보다 서로를 비추는 왜곡된 이미지가 중첩되고, 결국 추상적인 표면만 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3년부터 재개발 현장을 촬영해 재구성한 사진 작업도 선보인다. 서울 연희동 등 상업적인 '핫플레이스' 이면에 남아 있는 황량한 철거 현장과 오래된 주거 공간을 담았다. 사진 방향을 바꾸거나 디지털 드로잉을 결합해 관람자가 착각과 왜곡을 느끼도록 했다.


최 작가는 "철거가 시작된 건물은 더 이상 집의 기능을 못하지만, 단순한 쓰레기장도 아니다"라며 "1970년대의 생활과 역사를 담은 사물들이 남은 공간이 서서히 땅 아래의 역사로 내려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설탕과 세라믹으로 만든 유사 유물들이 공사 현장에서 막 발굴된 것처럼 놓여 있다. 설탕 유물이 습기를 머금어 서서히 녹고, 그에 따라 그림자도 사라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상영한다.


최은철 작. <수성아트피아 제공>

최은철 작. <수성아트피아 제공>

그는 "유물은 단순히 땅에서 나온 오래된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성과 가치를 부여한 물질"이라며 "가장 오래 보존돼야 할 것처럼 보이는 유물을 가장 빨리 사라지는 설탕으로 만들어 물질문명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자 위에 그림자'는 한 문명 위에 다른 문명이 쌓이고,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생겨나는 것이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순환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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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영남일보 권혁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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