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자이너에서 봉화 청년농으로…“스마트농업으로 농촌의 한계를 넘고 싶다”
“AI·유통혁신·영농대행까지”…사과밭에서 미래 농업을 설계하는 청년의 도전
박준호 씨가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 사과 과수원에서 수확을 앞둔 사과의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황준오기자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팔고,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가 농업의 경쟁력이 됐습니다."
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 사과밭에서 만난 박준호 씨는 스스로를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미래 농업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그는 지금은 봉화의 대표 특산물인 사과를 재배하는 청년 농업인이 됐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과수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AI와 스마트팜, 농산물 유통, 농촌의 노동력 문제까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바라보고 있다.
박 씨의 귀향은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중국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여행 중 만난 중국인 아내와 결혼했고, 회사의 경영난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고민하게 됐다. 결국 부모가 있는 봉화로 돌아와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동생이 이미 과수농사를 짓고 있었기에 정착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는 농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적인 한계와 마주했다.
"사과를 잘 키우는 것만으로는 농업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금방 알게 됐습니다. 생산보다 더 어려운 것이 판매였고, 농촌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일도 큰 숙제였습니다."
그는 농업의 답을 다시 '공부'에서 찾았다.
현재 AI 관련 학과에서 데이터 기반 농산물 유통을 공부하고 있으며, 경북농업마이스터대학 청년농 CEO 사과과정도 함께 이수하고 있다. 농업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데이터와 접목해 보다 과학적인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AI는 농부를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농부의 판단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활용하면 출하시기와 판매 전략도 훨씬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스마트팜에 대한 그의 관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온도와 습도, 양분 공급 등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통해 노동력은 줄이고 품질은 높이는 것이 목표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경험보다 데이터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박 씨는 농업의 미래를 개인 농장 안에서만 찾지 않는다.
그는 고령화로 일손 부족을 겪는 농촌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영농대행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첨단 장비와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고령 농가의 작업을 대신 수행하는 새로운 농업 서비스 모델이다.
"우리 농장만 잘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주변 농가와 함께 살아야 농촌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기술을 공유하고 영농을 대신하는 시스템까지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이력도 지금의 농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그는 "좋은 농산물도 브랜드와 디자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어렵다"며 "디자인 감각과 AI 기술을 접목해 봉화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든든한 동반자인 중국인 아내도 그의 도전을 함께하고 있다.
현재 경북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아내는 향후 유통과 법인 운영을 담당할 계획이다. 생산은 물론 경영과 판매까지 부부가 함께 준비하는 셈이다.
박 씨는 봉화군4-H연합회 활동을 통해 다른 청년 농업인들과도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농업 기술뿐 아니라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고민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상이다.
그는 "농촌을 어렵다고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며 "AI와 스마트농업, 브랜딩과 유통을 결합하면 농업은 청년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미래 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꿈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제 목표는 사과를 많이 생산하는 농부가 아니라 봉화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농업인입니다. 제가 배우는 모든 기술과 경험이 지역 농가에 도움이 되고, 봉화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서 디자인을 그리던 청년은 이제 봉화 사과밭에서 미래 농업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봉화 농업의 새로운 성장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황준오
현장의 작은 변화 속에서 지역의 미래를 읽는 보도로 봉화의 오늘과 내일을 기록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