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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조용한 전쟁…심윤이 펼친 ‘회색 극장’

2026-08-06 14:02

대구미술관 2026 다티스트 개인전
갈등·분열·피로 스민 동시대 풍경
‘조용한 게르니카’ 등 80여 점 선봬

지난달 22일 오후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심윤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지난달 22일 오후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심윤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오늘날의 전쟁은 총성과 폭격 대신 갈등과 긴장, 분열과 혐오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고 상처를 주면서 점점 더 조용한 형태로 폭력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대구미술관은 오는 10월11일까지 2·3전시실과 선큰가든에서 2026 다티스트 선정 작가 심윤의 개인전 '심윤: 회색 극장'을 연다.


이번 전시에선 심 작가가 오늘의 삶에서 포착한 '전쟁 같은 상태'를 조명한다. 회화와 드로잉 80여 점을 통해 경쟁과 갈등, 피로와 무감각이 스며든 동시대의 풍경을 하나의 연극처럼 펼쳐 보인다.


심윤 작. <대구미술관 제공>

심윤 작. <대구미술관 제공>

심 작가는 사회 전반의 대립과 분열이 깊어지면서 현대인의 일상도 보이지 않는 전쟁터와 닮아가고 있다고 바라본다. 그는 "세상이 둘로 갈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체제와 이념, 젠더, 계층 등이 완전히 갈라져서 서로 막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시 제목의 '회색'은 희망과 절망, 긴장과 무감각이 뒤섞여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시대의 감각을 뜻한다. '극장'은 저마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무대다.


심 작가는 현대인의 피로와 불안을 과장된 장면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화면 속 인물들은 말을 타고 화살을 맞으면서도 출근하고, 서로 기대 춤을 추거나 문에 매달려 위로 올라간다. '간 프로메테우스'에서는 간을 뜯기는 신화 속 형벌을 회식과 음주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으로 바꿨다.


심 작가는 "어두운 이야기를 할 때는 좋은 이야기를 할 때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든다"며 "제목이나 장면에 블랙코미디 같은 요소를 더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심윤 작. <대구미술관 제공>

심윤 작. <대구미술관 제공>

인물의 얼굴과 눈은 대부분 지워지거나 가려져 있다. 특정 인물의 사연보다 관람객 누구나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장면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얼굴이 나오면 사람들이 '이 인물은 누구인가'에 집중한다"며 "얼굴을 지워 익명성을 주고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작품은 흑백 화면이 주를 이룬다. 에어브러시로 분사한 아크릴 물감은 형상의 경계를 흐리고 현실과 비현실이 겹쳐진 듯한 회색 풍경을 만든다. 심 작가는 "색을 사용하면 제 눈에는 너무 산만해 보이고 이미지가 가진 힘도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며 "그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색을 제거하고 사이즈를 크게 키웠다"고 말했다.


전시의 중심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출발한 신작 '조용한 게르니카' 연작이다. 피카소가 폭격과 총성이 난무하는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다면, 심 작가는 갈등과 분열 속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그린다. 눈을 가린 목격자는 진실을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상태를 암시한다.


그가 전쟁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8~2019년 제작한 '리틀 보이' 연작부터다. 당시 실제 군인과 폭발 장면을 그리며 매체를 통해 전쟁을 소비하는 자신의 시선을 되돌아봤다. 심 작가는 "나는 왜 전쟁의 모습을 이렇게 못되게 바라보는가 생각했다. 저들은 정말로 괴로울 텐데 나는 겪어보지 않았다.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느냐는 데서 시작한 작업"이라며 "그때는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그렸다면, '심시티' 작업을 하면서는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선큰가든의 '천국의 문'은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공간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작품이다. 수많은 인물이 문에 매달려 위를 향하고, 가장 위에는 가면을 쓰고 날개를 단 채 노래하는 인물이 자리한다. 심 작가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있는 문이라고 생각했다"며 "문이 열린다기보다 사람들이 매달려 올라가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심윤 작. <대구미술관 제공>

심윤 작.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신작에는 그동안 심 작가의 화면에서 보기 어려웠던 여성과 어린아이도 등장한다.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이 작품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대학에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걱정도 되고 마음도 쓰인다"며 "결국 피해는 저 아이들이 다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서 소녀들을 무고한 희생자로 등장시켰다"며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에 대응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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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영남일보 권혁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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