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폭염엔 일감 끊기고 비 오면 공사 멈춰
대구 일용근로자 4만7천명·재활용자원 수집인 1천79명
전문가 “기후재난 시대, 소득보전 장치 필요
10일 오전 5시쯤 대구 북구 대동인력사무소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현장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 안성태 수습기자 tae@yeongnam.com
"덥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온열질환 예방 같은 소리는 사치죠."
폭염이 한풀 꺾이자 비 예보가 이어진 10일 오전 5시쯤 대구 북구 대동인력사무소. 아직 바깥은 어둑했지만 사무실 안에는 일감을 기다리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에 안전화를 신은 노동자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말없이 현장 배정을 기다렸다. 일자리를 놓칠까 평소보다 30분 이상 일찍 나온 이들도 있었다.
이날 만난 김철형(45)씨는 7년째 이곳에서 일을 구하고 있다. 최근 폭염과 잦은 비로 일감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김씨는 "평소 일주일에 4~5일 현장에 나갔는데 폭염 이후에는 2~3일밖에 못 나갔다. 한 달 수입도 최소 100만원 이상 줄었다"며 "업체들이 일기예보를 보고 전날 작업 여부를 정한다. 일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알아도 생활비를 벌려면 새벽마다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 일용직은 날씨가 나빠지면 근무일 자체가 줄어든다. 폭염에는 온열질환 우려로 작업이 중단되고, 비가 내리면 야외 공사가 취소된다. 근무시간만 줄이기보다는 일용직에게 하루치 일당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업체가 아예 인력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동인력사무소 차흥섭 소장은 "평소 하루 평균 25명 정도를 현장에 보냈는데 최근 40℃를 넘나드는 폭염 때는 10명 안팎까지 줄었다"며 "공정이 급한 거래처도 혹시 사람이 쓰러질까 봐 인력을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을 생각하면 이해하지만 일을 못 나가면 곧바로 수입이 끊기는 사람들이다 보니 중간에서 일자리를 연결하는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고 했다.
10일 오후 2시쯤 대구 중구 인교동에서 황판두(81)씨가 무더위 속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모으고 있다. 김민진 수습기자 kmjkmj@yeongnam.com
거리에서 폐지를 모아 생활비를 버는 노인들도 날씨를 피하기 어렵다. 같은 날 오후 2시쯤 대구 중구 인교동. 한낮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로 황판두(81)씨가 빈 손수레를 끌고 천천히 골목을 돌았다. 모자를 눌러쓰고 얼음물까지 챙겼지만 황씨의 등에는 금세 땀이 배었다.
황씨는 더위가 가장 심한 오후 2~5시 단골 가게 5곳을 돌며 상자를 받아온다. 가게들이 폐지를 내놓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작업시간을 옮기기도 어렵다. 닷새에서 일주일 동안 모은 폐지를 손수레 가득 싣고 고물상에 넘겨 받는 돈은 평균 2만원 정도다.
황씨는 "올여름은 정말 더웠다. 밖에 조금만 있어도 쓰러질 것 같지만 이 시간대가 아니면 폐지를 구하기 어렵다"며 "한번은 일을 하다 갑자기 어지러워 길가에 주저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몸에 무리가 오는 건 알지만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가 막막한데 무얼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10일 오후 4시쯤 대구 중구 대신동에서 한 폐지노인이 무더위 속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모으고 있다. 김민진 수습기자 kmjkmj@yeongnam.com
26일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구지역 일용근로자는 4만7천명, 폐지노인은 1천79명에 달한다. 폭염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추기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은 만큼, 안전대책과 함께 소득·돌봄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대 노진철 명예교수(사회학과)는 "일용직 노동자는 소득 불안정성이 큰 취약계층으로, 폭염으로 작업이 중단되면 곧바로 생계에 타격을 받는다"며 "옥외작업 중지 조치와 함께 임금 손실을 보전하고, 제주에서 시행하는 기후보험처럼 생명과 안전, 소득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대구와 경북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계명대 정미진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가뜩이나 취약한 폐지수집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폭염과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며 거리로 나서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노인 일자리와 소득 지원을 확대해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는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모(대구)
대구 서구와 북구를 맡고있습니다.
김민진
안녕하세요. 영남일보 김민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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