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영화평론가
고향을 묻는 질문에 아파트 단지로 답하는 세대가 있다. 이른바 '아파트 키즈'들이다. 아파트 키즈는 1980~1990년대 대단지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로, 콘크리트 복도와 단지 내 놀이터, 상가 등을 고향으로 인식한다. 대개 아파트 단지는 주택가에 비해 개인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한 울타리 안에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스포츠센터까지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던 초기 대단지 아파트는 그 자체로 거대한 마을이었고, 이곳에서 함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골목길 공동체 못지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 '콘크리트 녹색섬'(감독 이성민)은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온기 어린 고향이었던 한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 불렸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을 앞두었을 때, 이 단지의 아파트 키즈들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책을 시리즈로 출간하고 영상물을 제작하는 등 사라질 고향의 모습을 열심히 기록했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이들과 유사한 상실감 및 보존 욕구에서 출발해 지금은 자본주의적 욕망의 상징이 된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 1단지의 철거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농촌이나 구도심의 풍경이 서서히 변해가며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달리 아파트 재건축은 몇 달 만에 본래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꽤나 허망하다.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성민 감독이 재건축을 앞둔 주민들의 소회를 듣다가 '나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영화의 근간으로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수십 년 된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만큼 추억이 깃든 공간의 소멸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두 팔을 벌린 채 인사했던 아름드리 가로수들은 주민들에게 삶의 궤적을 함께해온 일상의 동반자이자 이 아파트에서 보내온 시간에 대한 증인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떠난 공간에 홀로 남아 울창한 녹색 생태계를 이루던 나무들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잘려 나가고 만다.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녹음을 드리웠던 나무들이 육중한 굉음과 함께 쓰러지는 장면은 여느 극영화의 고문 장면 못지않게 고통스럽다. 새 아파트로 이식하는 비용보다 폐기 처리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40년이란 세월의 가치와 공로가 묵살당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성비라는 이름하에 도시에서 묵인되고 자행되는 에코사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성민 감독은 이 씁쓸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단 한 그루의 나무라도 보존해보려 최선을 다하지만 거대한 자본과 조직이 결부된 재건축 단지에서 개인의 노력이란 역부족임을 확인할 뿐이다. 카메라가 나무의 운명을 기록하듯 나무들은 수십 년간 주민들의 일상을 묵묵히 응시해왔다는 후반부 영화의 성찰은 올봄에 개봉한 '침묵의 친구'(감독 일디코 엔예디)의 주제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수백 년간 한자리를 지켰던 나무는 몇 세대의 기억과 경험을 연결해주는 살아 숨 쉬는 매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진정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위해 필요한 콘크리트 녹색섬의 존재가치를 환기시킬 뿐 아니라 도심의 가로수길을 매일 활보하는 관객들이 나무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정서적 마중물이 된다. 아파트 키즈의 키즈들이 살아갈 도시는 무엇을 새로 만드는가보다 무엇을 지키느냐에 달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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