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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라지만…시각장애인에겐 여전히 ‘손끝의 문자’가 필요하다

2026-08-27 18:41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모습.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해 읽고 쓰는 문자다. 게티이미지뱅크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모습.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해 읽고 쓰는 문자다. 게티이미지뱅크

한동안 만지작거렸다. 점자가 있네? 몇 년 전 어느 도서관에서 취재원에게 받은 명함이었다. 시각장애인 이용자가 있을 수 있어 점자도 새겨 넣었다는 설명에 한참 만에 입을 뗐다. 겉으로는 평범한 명함처럼 보였지만 손끝으로 더듬자 이름과 소속을 알려주는 작은 점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점자를 읽을 줄 모르는 내겐 작은 돌기의 모음이었으나 누군가에겐 상대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편의점에 진열된 음료를 고르고, 미술관에 가 그림을 감상하지만, 어떤 사람은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야 한다. 무엇을 사고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는 일조차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시각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에 점자는 보이지 않는 정보를 손끝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문자다.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점자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점자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사회 전반에서 낮다. 법적으로는 하나의 문자로 인정받고 있으나 일상에서 이를 접하고 사용할 환경은 열악하다. 점자의 세계와 보급 현황을 들여다봤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 점자책 내지. 조현희 기자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 점자책 내지. 조현희 기자

◆디지털 시대에도 중요…"QR 찾기부터 어려워"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손끝의 촉각을 이용해 읽고 쓰는 문자다.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가 나라마다 다르듯 점자 역시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2016년 제정된 '점자법'에 따라 일반 활자와 동등한 효력을 가진 국가공인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한글점자의 경우 가로 2칸, 세로 3칸으로 구성된 6개의 점을 조합해 자음과 모음, 숫자와 문장부호 등을 표현한다. 어떤 위치에 돌기가 놓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글자가 된다. 자주 쓰이는 단어를 간략하게 나타내기 위해 점자식 '약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글만 있는 것도 아니라 수학·과학 분야의 기호는 물론 음표까지 표현할 수 있다.


대구점자도서관에 비치된 신간 점자책 코너. 시중에서 인기 있는 도서들로 꾸려져 있었다. 조현희 기자

대구점자도서관에 비치된 신간 점자책 코너. 시중에서 인기 있는 도서들로 꾸려져 있었다. 조현희 기자

인공지능(AI), 음성 인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제품 정보를 음성 제공 QR코드로 확인할 수 있고, 음성명령 기능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점자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박은희 대구점자도서관 총괄지원부장은 "스마트폰과 QR코드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휴대폰과 QR코드를 찾는 행위 자체가 어렵다"며 "점자 같은 직접적인 정보 접근 수단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최지현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 역시 "기술 발전으로 중도 시각장애인들은 촉각을 활용한 점자 해독보다 청독 활용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면서도 "청독은 촉독보다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청독 활용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맞춤법 지식 또한 저하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점자도서관 내부. 배리어프리(Barrier-Free) 건물이다. 조현희 기자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점자도서관 내부. 배리어프리(Barrier-Free) 건물이다. 조현희 기자

◆대구서도 점자 교육·책 출판 등 관련 사업 활발


이런 중요성으로 유관기관에서는 점자 활용·보급을 위한 사업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대구에서도 점자 교육, 점자 출판물·명함 제작 등 점자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은 대구점자도서관은 점자책, 오디오북, 큰글자도서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제공하며 시각장애인들의 독서와 문자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점자를 통해 성취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박 부장은 "시각장애를 갖기 전 오랫동안 미용 분야에서 일한 분이 계셨다. 그분이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점자책을 만들어드렸다"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성취감이란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뿌듯해하셨다"고 말했다.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한 지역사회 점자 홍보 및 인식개선 프로젝트.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한 지역사회 점자 홍보 및 인식개선 프로젝트.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다만 시각장애인 모두가 점자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완벽히 해독할 수 있는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의 경우 새로운 문자 체계를 익혀야 하기에 별도의 교육과 촉각 훈련이 필요하다.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이런 교육재활 사업의 일환으로 '맞춤형 점자교육'을 운영한다. 점자의 기본 원리와 표기법을 익히는 것은 물론 점을 읽어내는 촉각 훈련도 함께 진행한다. 점자에 관심 있는 비장애인 및 복지관 실습생을 대상으로 한 '열린점자교실'도 진행한다.


시중 약국에서 구매한 감기약. 점자 표기는 물론 음성 제공 QR코드도 없었다. 조현희 기자

시중 약국에서 구매한 감기약. 점자 표기는 물론 음성 제공 QR코드도 없었다. 조현희 기자

◆일상 속 보급은 제자리…의약품마저도 표기 없어


그럼에도 점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은 여전히 낮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5년 국민의 점자 인식 및 점자 사용 환경 조사'를 보면, 점자가 일반 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 것으로 국가가 인정한 문자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률은 비시각장애인 44.8%, 시각장애인 60.4%에 그쳤다. 공공기관의 점자 문서 제공 의무 제도에 대한 인식률은 비시각장애인 24.6%, 시각장애인 34.8%로 더욱 낮았다.


무관심은 일상 속 점자 보급의 한계로 이어진다. AI나 음성 인식 기술로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아 더욱 문제다. 필수재마저도 표기가 제한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 중인 완제의약품은 3만1천852개다. 이 중 0.12%인 39종에 대해서만 점자 표기 의무가 부과됐다. 약 포장지에 점자가 있어도 제품명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 성분, 복용 주기, 유통기한 등 구체적인 정보를 바로 확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약 오남용 위험도 높아진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탄산 캔음료들. 점자는 대부분 탄산 소다로만 표기돼 제품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조현희 기자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탄산 캔음료들. 점자는 대부분 '탄산' '소다'로만 표기돼 제품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조현희 기자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캔 음료, 컵라면 등에서는 점자를 비교적 찾아보기 쉽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제품을 선택하기에는 이마저도 제한적이다. 제품명 대신 '음료' '탄산' '라면' 등 포괄적인 단어로만 표기된 경우가 태반이다.


조한진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건 선택권을 갖기 어렵다는 것과 같다"며 "특히 의약품은 생명과 직결되는 제품인 만큼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은 한계가 있기에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제품은 점자를 의무로 제공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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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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