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 전 대구대 총장
무덥던 여름이 끝나간다. 대학 개강을 앞두고 문득 좋은 교육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본다. 거창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학생이 넘쳐났다. 학교 교실은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였다. 여름이면 땀 냄새가 가득했고 겨울이면 손을 호호 불며 버텨야 했다. 학생 수를 일정 기준 이하로 만드는 것이 당국의 중요한 정책 목표였다. 쾌적한 교실에서 좋은 선생님께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은 꿈이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한 데는 교육의 공이 크다. 그동안 교육 환경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꾸준한 재정지원과 정책적 노력이 결합하여 교육 현장이 바뀌고 개선되었다. 무엇보다 학생 수가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교육 당국의 의지와 노력도 큰 몫을 했다. 학생은 저마다의 개성과 학습 진척 정도에 따라 개별화된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우리 교육을 모범 삼아 연구하고 따라 하려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고등교육도 보편 교육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에 접근하기 손쉬운 시대다. 그러나 이런 빛나는 현실의 이면에는 콩나물 교실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대학이 온존하고 있다. 대학 강의실을 보라. 콩나물 교실은 흔한 일상이다. 인기 학과일수록 학생이 넘쳐난다. 좋은 교육은 애당초 불가능한 조건이다. 쇠락하는 학과는 학생이 없어 오히려 강의실이 쾌적하니 역설적이다.
중소 도시의 초등학교나 고등학교를 보라. 초·중등학교의 물리적 환경이 대학보다 낫다. 잘 갖춰진 운동장과 체육관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요즘 학생들은 한두 자녀 가정에서 태어나서 귀하게 자라온 세대다. 첨단 시설이 완비된 교실에서 최신 교육용 기기를 사용하며 교육받았다. 이들에게 대학의 물리적 환경은 처참하다. 고등교육은 미래 인재와 연구 혁신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고등교육 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대학생인 청년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를 상상해 본다. 산업사회와 대량 생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AI가 세상의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고 사람들은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도 대학 현장이 오래된 그대로면 곤란하다. 선진 교육을 찾아온 유학생들에게 제대로 대학다운 여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등교육 현장은 여전히 콩나물 교실, 낡은 책상과 의자, 빛바랜 스크린과 흐릿한 화면이 부지기수다.
대학마다 첨단 강의실을 틈틈이 확충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대학과 전문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대형 대학과 소규모 대학 등 대학 간 편차도 크다. 국립대학이나 대형 대학, 첨단 분야와 인기 학과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초·중등학교에서 학생 수 감소는 교육여건 개선으로 이어졌다. 고등교육에서 학생 수 감소는 지방대학의 생존을 위협하고 사립대학의 재정 안정을 해치는 위기일 뿐이다.
대학 위기를 말하며 고등교육 혁신을 추구해온 지난 20년 동안 교육 현장은 노후화되고 열악해졌다. 특히 사립대학은 재정 여력이 고갈되어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 개선도 엄두를 내기 어렵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기업이라면 벌써 파산했을 것이다. 대학 재정을 확충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절박해졌다. 대학의 콩나물 교실을 해소하고 좋은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투자라도 확대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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