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배 지휘자
가을은 다른 계절과 달리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확의 풍요로움도 있고 동시에 소멸의 쓸쓸함이 있다. 울긋불긋 화려한 그 빛깔 뒤에는 다가올 겨울의 하얀 정적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함이 결코 인생의 끝이 아니라, 비움과 고요를 통해 저마다의 다음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임을 우리는 안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좋아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이 계절이 되면 사람들은 가을이 건네는 고요 속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오롯이 즐기는 듯하다.
이처럼 가을에 우리가 시간을 오롯이 누리듯, 일상에서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의 여유'를 갖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한다. 이동을 위해 비행기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처음에는 피곤하다고만 느꼈었다. 여러 해 다니다 보니 이제는 어둡고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최근 비행기에서 본 영화 '굿 포츈(Good Fortune)'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천사의 시선이 떠오른다. 영화는 운명과 조건이 바뀌어도 정작 삶의 매 순간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하면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속 천사가 조용히 건네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다.
흔히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음악시간에 배우는 것처럼 주어진 사전 지식을 알아야 할 것 같고 해서일까? 빠른 매체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30분이나 1시간 동안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롯이 음악에 몰입해야 하는 혼자만의 '그 길었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색해진 탓일지 모르겠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라 불리는 수세기에 걸쳐 연주되고 있는 음악은 고상한 담장 안에 갇힌 예술품이나, 큰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는 대하소설이 아니다. 연주회장에서 엄숙하게 감상해야 할 듯한 많은 곡들이 전기수가 저잣거리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처럼 중세 방랑시인의 노래들이나 선술집에서 평민들이 삶의 애환을 달래며 부르던 길거리 음악들이 그 모태인 경우가 많다. 프랑스 혁명 이후 콘서트홀이 열리며 비로소 '모두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과 호흡했던 것이다.
관객들과 만날 때 내가 자주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평론가의 해설이나 정해져 있는 해설을 찾기보다, 연주회장에서나 집에서나 음악을 접할 때 오롯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봄을 이야기한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저마다의 삶의 장면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혹은 음악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다. 직관적인 언어나 짧은 자극에서 벗어나, 긴 호흡의 음악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행위는 단순히 음을 듣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비움과 고요를 통해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가을처럼, 음악 속에서 내 삶의 무수한 이야기를 비추어 보는 일 역시 다가올 나의 다음 시간을 오롯이 준비하는 시간일 것이다.
9월은 천고마비의 계절, 사색의 계절 혹은 고독의 계절이라 말한다. 잠시 삶의 속도를 줄이고 때로는 긴 호흡의 음악에 나를 맡겨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현재의 시간을 누릴 때,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선물 같은 운명(Good Fortune)을 만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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