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0902028075816

[문화산책] 대구에도 ‘아가멤논의 위엄’이 있었다

2026-09-03 06:00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요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화제다. 영화의 볼거리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 갑주(甲胄:투구와 갑옷 등 방호장비를 아우르는 말)로 중무장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베니 사프디 분)의 모습이다. 각진 투구 뒤로 척추를 연상시키는 금색 장식이 이어지는 독특한 모습은 개봉 전부터 논쟁을 불렀다. 일부 관객들은 "배트맨의 슈트 같다"며 비판했다. 미국 TIME과의 인터뷰에서 놀란 감독은 "검게 그을린 청동으로 만든 미케네 시대 단검이 실제로 있다. 청동에 금과 은을 더하고 유황을 써서 검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놀란은 의상 디자이너 엘렌 미로즈닉이 값비싼 재료를 이용해 아가멤논의 남다른 지위를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 속 아가멤논의 검은 갑주와 정확히 대응하는 유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아가멤논의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유물은 따로 있다. 1876년 하인리히 슐리만이 미케네 왕가 무덤에서 발굴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가 그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 이 가면은 트로이전쟁 시기보다 300~400년가량 앞선 기원전 16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왕의 이름이 붙었지만 정작 그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케네 전사들의 갑주가 볼품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멧돼지 엄니를 여러 줄로 이어 붙인 투구다. 투구 하나에 멧돼지 수십 마리의 엄니가 필요했으니, 투구 자체가 곧 부와 신분을 과시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갑주로 신분과 권위를 드러낸 것은 미케네인들만이 아니었다. 대구지역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확인된다. 현재 서구 비산동과 내당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경주 대릉원을 연상시킬 만큼 큰 신라 고분들이 남아있었다. 옛 달구벌 지역을 다스리던 지배층의 무덤군인 달성고분군이다. 달구벌은 신라 편입 뒤에도 상당한 정치적 비중을 지녔고, 통일신라 신문왕은 서라벌에서 이곳으로 천도를 시도하기도 했다. 달성고분군에서 출토된 5세기대의 금동제 팔뚝가리개는 금동관·태환이식 등과 함께 신라 왕실이 지방 유력자에게 내린 하사품으로 해석된다. 대구가 중앙에서 공들여 관리한 주요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이 고분군의 주요 출토품은 국립대구박물관 고대문화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같은 시기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제 팔뚝가리개(보물) 역시 순은판에 꽃봉오리 무늬를 새기고 팔꿈치 쪽을 뾰족하게 마감해 은빛 광채와 위압감을 함께 드러냈다. 팔뚝가리개는 철제로도 만들어지는데 은과 금동이란 재질은 착용자의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 장치였다.


미케네의 멧돼지 엄니 투구든, 신라의 은제·금동제 팔뚝가리개든, 갑주는 몸을 지키는 동시에 착용자가 누구인지를 나타냈다. 그렇게 보면 놀란 감독의 과장된 검은 갑주는 고증 면에서는 논란거리일지 몰라도, 갑주에 권력을 새기는 인류의 오래된 습관만은 정확히 짚은 셈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