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내국세에 연동되는 정률분 지방교부세가 무려 30조5천억원이나 삭감됐다. 반도체 호황 초과 세수로 조성하는 '미래대응기금'을 제외한 내국세를 기준으로 교부세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식 개편으로 줄어드는 지방 재원을 미래대응기금 지방계정을 통해 다시 지방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앗아가고는 생색내며 던져주는 꼴이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써야 할 정률 교부세를 빼앗아 중앙정부가 '시혜성 예산'으로 바꿔치기한 것은 '쌈짓돈 재정'의 극치이자 지방자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추경호 대구시장은 "더 걷히는 내국세를 중앙정부가 가져가겠다는 발상은 지방 주도 성장이라는 국정 방향과 맞지 않고, 지방정부의 자치 능력에 대한 불신"이라고 비판했다. 타당한 진단이다. 세수 증대의 결실이 지역 자율성을 확충하는 마중물이 돼야 마땅함에도 정부는 시대에 역행하는 중앙집권적 재정 독주를 고집하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 훼손도 심각하다. 사업 지출액의 30%를 국회 심의 없이 정부가 임의로 증액하겠다는 것은 헌법 제54조가 규정한 의회의 예산 심의·확정권을 정면 부정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수천억, 수조 원 사업의 재량권을 정부에 넘기는 것은 의회유보 및 포괄위임금지 원칙을 짓밟는 행위다. 아무리 국가적 과제가 시급하더라도 편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정부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30% 자율 증액 조항을 즉각 폐기하고, 지방교부세 편법 삭감을 철회해야 한다. 의회의 견제와 지방과의 공정한 상생을 담지 못하는 기금은 결코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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