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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정치가 숨 쉴 ‘방’ 하나는 남겨두자

2026-09-04 06:00

화제모은 李 여야 골프
타협위한 대화공간 주목
협상엔 비공개도 필요해
공개정치선 연설만 이뤄져
협치위한 공간도 남겨야

정재훈 서울본부 서울취재팀장

정재훈 서울본부 서울취재팀장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여야 정치인들과 골프를 쳤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비공개 일정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골프 회동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개헌 등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의원들을 접촉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기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몇 시간 동안 함께 걸으며 카메라 없이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요즘 정치는 너무 잘 보인다. 대통령의 발언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은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당내 논쟁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숏폼으로 잘려 나가 몇 분 뒤면 지지층에게 전달된다. 이는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다. 권력은 감시받아야 하고 중요한 정책 결정의 과정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밀실정치를 옹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의 모든 행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화와 타협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협상'은 본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일만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조건을 제시하며 때로는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과정이다.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을 상대의 설명을 듣고 "그 정도라면 검토할 수 있다"고 바꾸는 것도 정치의 한 부분이다.


문제는 카메라 앞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공개된 자리에서 정치인은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만을 보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지층과 당원, 동료 의원, 언론과 유튜브 시청자까지 의식한다. 결국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자기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물러서지 않았는지를 증명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두 정치인이 마주 앉았는데 천만 명이 함께 듣고 있다면 그것은 협상보다는 연설에 가까울 것이다.


'전쟁통에서도 대화는 한다'는 말도 있다. 적대하던 국가와 무장세력조차 갈등을 끝내기 위해 비공개 대화를 활용한다는 의미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런 공간을 '백채널'이라고 부른다. 공식 협상이 막혀 있을 때 당사자들은 공개되지 않은 통로를 통해 상대의 의중을 떠본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상과 오슬로 협정 등 굵직한 역사적 합의 뒤에도 이런 백채널이 있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비공개 자리에서는 검토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정치적 부담 없이 다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골프가 눈길을 끈다. 물론 방식이 골프여야 할 이유는 없다. 산책이어도 좋고 식사도 괜찮다. 관저에서 차 한잔을 마셔도 된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공식 행사가 아니라 서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시간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골프 라운딩 중 몇 시간을 함께 걸으며 "우리 당·정부에서는 공개적으로 하기 어렵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가능하다", "당신들이 이 부분을 받아준다면 우리도 여기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말을 주고받는다면 어떨까? 지금 한국 정치에 가장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비공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밀실 야합을 용인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골프를 치는 것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 챙기기나 갑질성 골프가 아니라 야당과 소통을 위해 만났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는 의미다. 정치에는 상대의 의중을 떠볼 자유가 필요하고, 제안을 거둬들일 자유도 필요하다. 그것이 타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공개 정치도 좋지만 대화할 방 하나쯤은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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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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