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따옴표의 시간
◆겹따옴표의 시간/김용주 지음/책만드는집/132쪽
대구에서 시낭송가와 동화구연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용주 시조시인이 세 번째 시조집 '겹따옴표의 시간'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타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일상의 순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겹따옴표'의 미학을 시조 특유의 정형률 속에 녹여낸 작품집이다.
시인이 말하는 '겹따옴표'는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는 인용의 형식이면서, 자신의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대상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객관적 거리두기를 의미한다. 여기에 찰나의 순간을 오래된 시간의 깊이와 포개는 시조의 특성이 더해져 가족 서사와 역사·시대, 자연과 구도, 계절의 서정, 일상과 고독 등 다섯 갈래의 주제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특히 제5부에 실린 '봄말'은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퇴근길 버스라는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서 젊은이의 '안녕하세요', 중년의 '감사합니다', 노인의 '사랑합니다'라는 세 마디를 포착한다. 무심히 스쳐 지나갈 법한 짧은 인사말에 귀 기울임으로써 세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차갑고 무표정한 대중교통 공간은 어느새 사람의 말이 오가는 따뜻한 '봄의 공간'으로 바뀐다. '봄말'이라는 제목처럼 언어 한마디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관계의 틈을 메우는 셈이다.
이처럼 김용주의 시조는 거창한 사건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작은 장면과 말에 주목한다. 그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짧은 정형시 안에 삶의 여운을 길어 올린다. 문무학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두고 "정교하게 비워둔 문장부호의 틀 속에 독자 자신의 시간을 채워 넣도록 이끄는 열린 시학이자, 각박한 현대 사회에 언어의 품격과 온기를 건네는 실존적 기록"이라고 평했다.
그 동네
◆그 동네/김한식 지음/화서나무/295쪽
공직자가 30여 년간 현장에서 마주한 조직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소설로 풀어냈다. 김한식 작가의 장편소설 '그 동네'가 출간됐다.
작품은 가상의 도시 '분성시'와 산업지원기관 '산업진흥마트'를 무대로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갈등, 좌절과 연민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사장의 말 한마디에 조직의 분위기가 바뀌고, 인사 한 줄에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좌절한다. 권력에 기대는 사람, 침묵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조직이라는 작은 사회의 생리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행정고시 37회로 공직에 입문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지방중소벤처기업청 등에서 중소기업 정책과 지역산업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을 거쳐 2024년 제11대 대구테크노파크 원장에 취임했다. 오랜 공직 경험과 산업지원 현장에서 쌓은 감각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 조직의 작동 방식과 사람들의 심리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동네'는 특정 기관이나 개인을 지칭하기보다 하나의 조직이자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힘의 질서와 관계의 계산, 생존을 위한 침묵과 선택을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 권력과 탐욕, 충성심과 배신, 우정과 연민이 교차하는 모습은 조직생활을 경험한 독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공공기관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어느 조직에나 닿아 있다. 상사의 눈치를 살피고 조직의 분위기에 휩쓸리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업과 협회, 단체, 지자체 산하기관 등에서 일하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문학철 지음/도서출판 책과나무/140쪽
문학철 시인은 시로 삶에 닿으려 한다. 다섯 번째 시집에서도 그 지향은 변함없다. 일흔 즈음에 이른 시인은 달과 별과 꽃을 가리키는 손끝을 읽으며 언어의 그물로 시를 건져 올린다. 사물과 만나고 사건을 경험하면서 사유와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그의 시는 일상과 생활의 경험에서 비롯된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내며 기억과 예감 사이에서 섬세하게 흔들린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에 대한 관조를 바탕으로 자연과 사물을 시의 언어로 길어 올린다. '입동 즈음에'와 '부치지 않을 편지'에 수록된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청류동'과 '삼성반월교' 같은 구체적인 장소, '산속 오두막'으로 상징되는 정주의 공간, 산책길에서 만나는 강과 들길은 시인의 내면을 비추는 풍경이 된다. 눈앞의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곧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마음 깊은 곳의 공명이 조용히 드러난다.
삶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럽게 죽음과 그 너머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 '봄날 아침에' '살구나무 꽃그늘에서' 등의 작품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성찰을 만날 수 있다.
한편 기억과 추억은 사물이 불러내는 뜻밖의 힘을 통해 현재로 돌아온다. '옛날 옛적에'와 '부치지 않을 편지'에 실린 시편들은 가까운 사건과 사람을 불러내 사랑과 이별의 정서를 노래한다. '나뭇잎 편지', '구절초', '그대 하늘에 귀 하나 걸다', '이별가' 등이 그러하다. 특히 '이별가'는 직유를 거듭 변주하며 이별의 감정을 밀도 있게 확장해가는 작품으로, 시인의 언어 감각을 잘 보여준다.
문학철의 이번 시집은 자연과 기억,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사유를 통해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스미는 것은
◆스미는 것은/장순덕 지음/맑은책/120쪽
장순덕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스미는 것'을 펴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풍경, 사물과 기억을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의 순간순간에 깃든 의미를 길어 올린 시편들을 담았다.
시집은 '달빛 걸음', '마법의 소포', '솔바람의 게송', '몽상의 착지' 등 4부로 구성됐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출발한 시선은 자연과 기억, 상상과 내면의 세계로 확장되며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특히 작은 사물과 스쳐 지나가는 풍경, 마음에 남은 사람의 모습을 통해 삶의 흔적과 정서를 포착하는 시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장 시인의 시는 거창한 언어로 삶을 설명하기보다 가까운 것들을 오래 바라보며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때로는 고단하고 쓸쓸한 삶의 풍경을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과 아름다움을 길어 올린다. 제목인 '스미는 것'처럼 그의 시 세계는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조용히 마음에 번져 오래 머무는 여운을 남긴다.
시인은 2013년 문학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6년 영남문학 수필 부문 송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영남문학 이사로 활동하며 꾸준히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시와 수필을 아우르며 쌓아온 문학적 감성이 이번 시집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스미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하루 속에서도 삶의 빛나는 순간을 발견하게 하는 시집이다. 무심히 지나친 풍경 하나, 가만히 떠오른 기억 하나에도 마음을 적시는 의미가 있음을 일깨운다.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독자의 마음에 천천히 스며들어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정리=김형범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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