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상징의 힘=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독립 35주년 기념일, 세계인의 시선이 모인 곳은 수도 키이우가 아니다. 파리의 에펠탑이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노란색 조명이 파리의 밤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현장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수많은 파리 시민이 모여 연대와 지지를 보냈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 건축물인 에펠탑. 오늘날에는 국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선포하는 공공외교의 무대로 진화 중이다.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공간'에서부터 존재 이유를 웅변한다. 뉴욕항 리버티섬. 과거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마주한 첫 관문이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과 민주주의, 해방과 노예제 폐지, 이민자에게 자유와 새출발을 약속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런 상징의 힘이 뉴욕의 도시 이미지를 강화하고, 연간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모은다.
'상징'은 단순한 시각적 조형물이나 명칭을 넘어 도시의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한다. '우리가 같은 공간에 속해 있다'는 강한 유대감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가치를 지닌다.
#연찬회의 박근혜=최근 국민의힘 연찬회에 등장한 박근혜 전 대통령. 그 장면이 어떤 연상(聯想)을 자극했다. 노무현의 김해 봉화마을, 문재인의 양산 평산책방, 박근혜의 대구 달성 사저가 오버랩됐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이들이 향한 지방의 세 공간은 단순한 은퇴 후 거처가 아니다. 지지자들의 열망과 상처, 치유의 서사가 압축된 공간이다. 봉화마을과 평산책방은 이미 진보 지지자들의 신념이 모이고 흩어지는 독특한 정치·문화적 플랫폼이 됐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박근혜의 달성 사저는 애틋한 침묵과 보수의 원초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침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보수 대권 후보나 유력 정객들이 박근혜 사저를 찾는 건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고견을 경청하고 연대를 모색한다.
국힘 연찬회는 박근혜식 은퇴 정치의 분기점이 될까. 현실화하면 그 지리적 배경 '대구'가 박근혜의 정치적 아우라에 휩싸이는 건 한순간이다. 부친 박정희를 기리는 동상이 동대구역 광장을 비롯해 최소 7개 이상 세워진 곳이 TK다. 신공항도 '박정희 공항'이라 명명하려 한다. 법적 공방과 찬반 논란이 이어진다. 박근혜도 탄핵되고 여러 항목의 죄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실패한 정치인이다. 그런 박근혜는 부친과 함께 대구 보수성을 현시(顯示)하는 상징이 되어 가고 있다.
#좋은 도시의 상징=격동의 근현대사까지 켜켜이 쌓여온 천년의 시간을 품었음에도 '대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상징어가 기껏 '대프리카'다. 그렇다고 실패와 논쟁적·퇴행적 과거에서 굳이 대구의 상징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TK 보수성의 상징은 모름지기 이 정도의 역사적 자긍심은 품고 있어야 한다. 호국보훈의 성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산업화의 전진기지, 삼성의 시원지(始源地), 유교정신문화의 요람,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 대구의 땀과 피가 스며든 값진 정신적 자산들이다. 품격 있는, 품 넓은, 공의로운, 책임지는, 미래를 여는, 능력 있는, 존경받는 보수의 상징과 정신이 그 속에 다 있다. 고치에서 실을 뽑듯 천천히 하나씩 정성껏 발굴해 선양할 도시의 가치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상징은 '무엇을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도시를 무엇으로 기억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게 완성될 때 비로소 "나는 대구사람이다"라는 말에 자긍심이 흐른다. 좋은 도시의 상징은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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