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15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서 국내 첫 개인전
공동의 기억으로 고정되지 않은 정체성 탐구
지난달 27일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토모카즈 마츠야마가 자신의 디자인이 들어간 옷을 걸치고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 기자
분홍빛 하늘에 해인지 달인지 알 수 없는 둥근 빛이 걸려 있다. 화면 왼쪽에는 푸른 언덕과 벚꽃이 어우러진 봄 풍경이 펼쳐지는 반면, 오른쪽에는 눈으로 뒤덮인 한겨울 풍경이 자리한다. 눈밭에는 백합과 모란이 피어 있고, 화면을 채운 흰 점들은 흩날리는 벚꽃인지 눈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리안갤러리 대구가 오는 10월15일까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본 출신 작가 토모카즈 마츠야마의 국내 첫 개인전 'Homing In Dedicated'를 연다.
지난달 27일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마츠야마는 "지금 한국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꽃피고 있는 시기라고 느낀다"며 "이런 때 국내 첫 개인전을 열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마츠야마의 회화는 다양한 문화적·역사적 맥락과 동시대 시각 문화에서 가져온 이미지와 모티프를 한 화면에 불러온다. 서양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 일본 고전회화에서 차용한 요소들은 하나로 매끄럽게 융합되기보다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연상을 간직한 채 재구성된다. 이들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낯선 조합과 긴장을 만들고, 문화와 기억, 시각 언어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동시대 세계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토모카즈 마츠야마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이번 전시의 제목에는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귀향과 소속의 문제가 담겨 있다. 마츠야마는 "'집을 찾겠다'는 선언이지만 정작 내게는 집이 없다"며 "일본에서 미술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작가가 됐지만, 미국에서도 아시아계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제목에는 귀향과 복귀의 의미와 함께 작업에 계속 헌신하며 열정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첫 개인전을 대구에서 연 것도 전시 제목과 맞닿아 있다. 마츠야마는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기간에 서울에서 전시하는 것은 자신이 생각한 귀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로 돌아온다는 의미에는 대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 대구 전시를 원했다"며 "이번 전시가 진정한 귀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츠야마가 작품에서 말하는 정체성은 특정 국가나 민족에 고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교차하는 뉴욕에서의 생활은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축적하고 새로운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묻지만 작가 개인의 '나'는 결국 '우리'로 확장돼야 한다"며 "오늘날의 글로벌 정체성은 국가나 민족, 성별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축적한 '공동의 기억'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오랜 문화와 역사, 미국의 스포츠·소비문화 등 서로 다른 배경을 한 화면에 쌓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츠야마는 "일반적으로 함께 놓이지 않을 여러 정체성을 한 화면에 표현하고 싶었다"며 "공동의 기억은 공동의 정체성이 되고, 다시 공동의 목소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디자인 경험은 이미지의 결합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일본 미술 전시실에서 본 우키요에를 통해 전통 목판화와 디지털 그래픽의 연결점을 발견했다. 마츠야마는 "목판화는 여러 개의 판을 겹치고 색을 채워 이미지를 만든다"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여러 레이어를 겹쳐 이미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기본 원리가 비슷하다. 기술과 시대는 달라도 이미지를 구성하는 사고에는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토모카즈 마츠야마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마츠야마는 미술사 속 이미지와 동시대 대중문화 이미지 사이에도 위계를 두지 않는다. 그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본 우키요에 가운데 한 작품은 유명 가부키 배우와 당시 유행하던 의상을 담은 공연 포스터였다. 지금의 K팝 아이돌 포스터도 100년 뒤에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걸릴 수 있지 않겠나"라며 "작가의 역할은 현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의 소비문화와 패션도 훗날 2026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미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준
영남일보 권혁준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