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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의 사람학교] 볼펜 한 자루와 200억 원짜리 집

2026-09-08 06:00
박혜경 한동대 교수

박혜경 한동대 교수

한 고위 공직자가 사무실 전화로 사적인 통화를 한 사실이 감사에서 적발돼 곤경에 처한 일이 있었다. 문제된 금액은 우스울 만큼 적었다. 그런데 그가 퇴근 후 자택 전화로 처리한 공적 업무의 통화료가 오히려 더 많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안은 마무리되었다. 오래전 유학 시절의 일이다.


그때 내가 놀랐던 것은 사건 자체보다 작은 액수까지 공과 사의 경계를 따져 묻는 그 사회의 엄격함이었다. 당시 우리는 공과 사의 경계가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다. 사무실 볼펜이나 복사용지 몇 장, 믹스커피 몇 개를 집으로 가져가도 큰 잘못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 정도쯤이야.' 한 조직의 구성원이 누릴 작은 복지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웃지 못할 풍경도 있었다. 뷔페에 갈 때 비닐봉지나 밀폐용기를 챙겨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값을 냈으니 남은 음식을 조금 가져가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습관이자 음식을 버리는 것을 유난히 아까워하던 세대의 정서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지만 당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최근 국세청이 고가 법인주택 2천639채를 전수 점검한 결과, 무려 42%에 달하는 1천97채를 사주 일가가 거주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이 '황제사택'이라 부른 주택 중에는 공시가격이 200억 원을 넘는 곳도 있었다. 볼펜 한 자루와 200억 원짜리 집을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Trust)'에서 한 사회의 번영을 떠받치는 자산으로 신뢰를 꼽았다.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도 공동체의 규범을 지킬 것이라 기대할 수 있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반대로 '나 하나쯤이야'가 일상이 되면 조직은 사람을 믿는 대신 영수증을 요구하고, 감시 장치를 만든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는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이 따른다.


문제는 액수가 아니라 경계를 대하는 태도다. 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적인 저녁 한 끼, 법인차로 다녀오는 개인 용무. 처음에는 사소한 예외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정도쯤이야'가 반복되면 예외는 관행이 되고, 공과 사의 경계도 흐려진다. 신뢰는 거창한 잘못보다 모두가 묵인하는 작은 허용에서 먼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뷔페에 비닐봉지를 챙겨가던 풍경도 이젠 사라졌고, 공공기관과 기업의 회계와 감사도 엄격해졌다. 그러나 잘살게 되었다고 저절로 신뢰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볼펜 대신 법인카드가, 복사용지 대신 법인차가, 그리고 이제는 법인 명의의 최고급 주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다음 세대에 유독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남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시험지 한 귀퉁이를 슬쩍 넘겨다보는 일, 조별 과제에 이름만 얹는 일. 그런 작은 습관이 훗날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 말해 주고, 스스로 본을 보여야 한다. 정말로 가르쳐야 할 원칙은 이런 게 아닐까. 작은 것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결국 큰 것 앞에서도 정직하다는 사실.


공과 사를 가르는 선은 거창한 곳에서만 무너지지 않는다. 볼펜 한 자루를 집던 손이 언젠가 200억 원짜리 집의 열쇠를 쥔 손이 될 수 있음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에게 허락한 작은 예외가 신뢰의 둑에 틈을 낼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 작은 틈을 경계하는 사회만이 신뢰라는 자산을 오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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