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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직 읽지 않은 책

2026-09-09 18:00
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책장 한 칸에는 읽지 않은 책이 꽂혀 있다. 꽂혀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읽겠다는 다짐과 함께 꽂아둔 책이 열 손가락을 넘어간 뒤로는 숫자를 세지 않고 있다. 책 한 권을 완독하고 책을 사겠다는 규칙을 세웠지만,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았다. 동네 서점에 가면 서점 지기가 들여놓은 책 중 사고 싶었는데 잊고 있었던 책을 발견하기도 했다.


물론 책을 읽는 속도와 사는 속도가 아무리 빨라진다고 한들 책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5년에는 약 6만5천종의 책이 납본되었다. 납본의 의무가 없는 독립출판물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은 책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는 북페어도 성황이다. 북페어가 정말 책이 중심이 되는 행사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사람과 책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장임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휴대폰으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책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책은 나름의 쓸모를 증명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책장 한 칸에는 읽지 않은 책이 꽂혀 있다. 언젠가 읽겠다는 다짐까지 겹쳐 있으니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저 책들의 쓸모라면 무엇이 있을까.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는 게 가장 큰 쓸모가 아닐까. 책등에 적힌 제목만 보더라도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가 책이라는 물성 안에 보존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사더라도 이 쓸모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나를 노려본다는 생각이 들 때는 외출하기 전에 괜히 가방에 책을 넣어둔다. 가방에 책이 있더라도 책을 꺼내지 않는 날이, 읽는 날보다 읽지 않는 날이 더 많다. 최근에 읽던 책은 한 달째 이 가방 저 가방을 옮겨 다니며 나와 함께하고 있다. 출퇴근길에는 피곤해서 안 읽고, 어쩌다 점심시간이 남아서 책을 읽어보려고 해도 몇 장 넘기다 잘 읽히지 않아 그만 읽게 된다.


그럴 때는 책과 산책했다고 여기면 된다. 책장에만 갇혀 있던 책이 바깥 공기를 쐬면서 환기가 되었다면 다시 책장에 꽂히더라도 나를 덜 노려보지 않을까? 그러니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가는 사람들, 읽지 않은 책이 자신을 노려본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책과 산책을 권하고 싶다. 읽지 않더라도, 펼쳐보지 않더라도 당신이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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