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예술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마다 난감한 문제 중 하나가 '자기'와 '타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지점에 대한 설명이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와 나 바깥의 '타자'라는, 이른바 근대적 주체론의 힘이 강할뿐더러 개인화된 생활문화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기와 타자 간의 경계가 흐릿해진다는 이야기는 다소 허무맹랑한 허구이거나 환상처럼 들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따지고 보면 꽤 오래된 인류의 고민이기도 하다. 재일 조선인 정치학자 강상중은 '고민의 힘'이란 책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기와 타자를 각각 자아로 독립해 있는 것으로 보면 인간 사회는 각양각색의 '자아의 무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각각의 자아가 제멋대로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상을 그리고 있다면 자기와 타자의 공존은 성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와 타자를 연결하는 회로를 어떻게 만들어야 공통의 세계상을 형성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근본적인 주제가 되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기와 타자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공유지대를 발견 내지 창조하려고 했다. 이런 생각에서 각자의 차이를 억압하는 문명의 힘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류의 꿈은 차이의 논법과 대립하는 동일성을 찾으려 했다기보다 차이보다 아래 놓인 커다란 같음의 차원을 발견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같음의 토대 위에 다양한 차이가 수놓아지고 있는 형상이 곧 인류 공동체의 모습은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더라도 서로에게서 직관적으로 생명의 얼굴이라 불릴 만한 어떤 것을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계간지 창작과 비평 2026년 가을호에는 '평화'를 주제로 한 시편들이 모여 있다.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전쟁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위기와 분열의 징후가 적지 않은 지구공동체의 현 상황을 인류가 축적한 지혜 중 하나인 시인들의 언어로 돌보는 현장이 펼쳐진다. 그중 마윤지 시인의 '도요물떼새'라는 시를 소개하려 한다.
비어 있는 수평// 선// 비어 있는 저녁// 낮게// 사람들이// 고갤 들고 서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보다 더// 오래는 아닐 것처럼// 서 있다
갯벌이 펼쳐진 서해 어디쯤일까.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날아오른 도요새 군집을 바라본다. 한 생명의 무리에 다른 종 생명의 무리가 동조하듯 움직이며 시선을 옮기는 중이다. 그 순간 시선의 주체인 인간은 자신의 주체성을 벗어나 훌쩍 날아오르는 감각에 흠뻑 빠져들었을 것도 같다. 짧은 순간 종차[種差]를 넘어선 생명들의 소통이 일어남은 물론이거니와 비어 있던 수평('평등')의 감각과 선[善]함의 분위기가 저녁처럼 붉게 내려앉는다. 사람의 자리가 다른 생명의 낮은 자리로 스스로 이동하며 펼쳐진 장엄하고 아름다운 시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새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싶다. '도요물떼새'라는 이름은 묘하다. 군집 자체('떼')가 이미 생명의 이름 안에 녹아 있으며, 또 '도요'라는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음성도 이미 그 이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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