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 50~60대 주민 4명
20여 종류 꽃 정원에 심어
잡초 뽑고 계절에 맞는 꽃 심으며 치유
이흥열(맨 앞부터)·백성대·공진규·장종민씨가 지난 5일 자신들이 가꾸는 대구 동구 서호동의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점순 시민기자
"형님! 비가 오고 나니 정원에 바랭이가 꽃보다 더 자랐어요, 정원에서 단합대회 합시다."
지난 5일 오전 9시. 여유로운 휴일을 맞아 대구 동구에 살고 있는 장종민(69)·백성대(60)·이흥열 (58)·공진규(58)씨가 대구 동구 서호동 마을 한쪽 자투리땅 정원에 모였다. 이곳은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약 100m 정도 길 양쪽에 1천500㎡의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낮 달맞이, 마리골드, 맨드라미 등 20여 종류의 꽃들이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낸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기가 바쁘게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정원에 쪼그려 앉는다. 투박한 손으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아내는 손길 사이로 소소한 일상이 오간다. "이제 더위도 막바지야", "지난주보다 낮달맞이 꽃이 많이 피었네"로 시작한 가벼운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깊은 속내로 이어진다. 각자 다채로운 청춘을 지나왔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해진 머리숱만큼이나 서로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는 나이다.
퇴직 후 찾아온 허무함, 자식들 뒷바라지에 남은 묵직한 책임감,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쓸쓸함까지 차마 집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풀 한 포기를 뽑아낼 때마다 담담하게 터져 나온다. 거창한 위로나 격식 있는 자리는 없지만 땀방울을 흘리며 나누는 온기 속에 가슴속 응어리가 자연스레 녹아내린다. 정원 가득 꽃향기가 번질 즈음 허리를 펴고 서로를 바라보며 허허 웃는다.
장씨는 "땀을 흘리며 화단을 가꾸는 작업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바쁜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비우는 치유의 공간이다"고 귀띔한다. 이씨는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 정원을 공유하고 난 뒤 새참으로 시원한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 또한 소소한 행복"이라며 얼굴 가득 미소 짓는다.
공씨는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집 밖으로 나와 흙을 만지면 어느새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 힘든 시간 버틸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 곳"이라고 말했다. 백씨도 "가슴이 답답할 때 정원에 나와서 꽃을 마주하면 가슴이 뻥 뚫린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피어나는 꽃을 마주하면 신비한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꽃 한 송이에서도 삶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인생의 허무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로 우울감을 겪던 이들은 자투리땅 꽃밭에서 흙을 일구고 잡초를 뽑으며 계절에 맞는 꽃을 심는 단순한 노동에서 뜻밖의 치유를 얻는다. 땀을 흘리며 정원을 가꾸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근심과 답답함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평범함이 혼자만의 외로움에 갇혀 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함께 꽃을 피워내며 깊은 유대감과 삶의 새로운 보람을 공유하고 있다. 자투리땅은 이제 단순한 정원을 넘어 이들에게는 따뜻한 휴식을 안겨주는 화합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흙을 만지며 마음의 병을 치유한 이 남성들은 정원이 자라나는 만큼 자신들의 삶도 푸르게 가꾸어 가고 있다.
이웃들과 함께 꽃을 가꾸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소통이 늘어났고 바쁜 현대사회에서 잊고 지냈던 마을 공동체의 정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팍팍한 도심 삶 속에서 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중한 쉼터, 주민들의 지친 일상을 다독이는 치유의 공간에서 이들은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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