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가 편의점 GS25 등과 협업해 선보인 '문학빵'. GS리테일 제공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갖고 있어요. '한여름밤의 꿈' 구합니다."
최근 당근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라오는 글들이다. 얼핏 보면 문학 도서를 사고파는 것 같지만 거래 물품은 책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빵을 사면 무작위로 들어 있는 책갈피다. 원하는 책갈피를 얻기 위해 온 동네의 편의점을 둘러보고 빵을 여러 개 구매한다. 그래도 구하지 못한 것을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찾아 나서는 것이다. 몇몇 책갈피는 빵값을 훌쩍 웃도는 가격이 붙는다.
민음사의 '문학빵'. 세계문학전집 15종과 한국 대표 시집 책갈피 5종의 책갈피를 무작위로 동봉했다. GS리테일 제공
이는 출판사 민음사가 편의점 GS25 등과 협업해 선보인 '문학빵'의 굿즈다. 민음사는 지난달 21일 도서 표지 디자인과 굿즈를 결합한 편의점 빵 상품을 출시했다. 출판사의 시그니처 도서 시리즈인 세계문학전집 표지와 책 속의 명문장을 패키지에 녹여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문학전집 15종과 한국 대표 시집 책갈피 5종을 무작위로 동봉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르는 데다 이색적인 책갈피 자체가 소장 욕구를 자극해 품귀 현상을 빚었다. 제품은 출시 3일 만에 5만개가 판매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고가 있는 매장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잇따른다.
독서 인구가 줄고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출판사의 마케팅 방식도 변하고 있다. 책과 관련한 친근한 콘텐츠와 상품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늘려 책으로 관심을 유도한다. 전통적으로 '조용한 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출판계에서 출판사를 하나의 문화 콘텐츠 브랜드로 만드는 모습이다. 대구의 소규모 출판사들도 제한된 인력과 비용 안에서 SNS와 도서전 등을 활용하며 존재를 알리고 있다.
민음사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콘텐츠 '민음사 편집자&마케터의 세계문학전집 월드컵'. 민음사TV 캡처
◆문학빵·유튜브·릴스…책 홍보 방식이 달라졌다
민음사는 문학빵 외에도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를 통해 국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민음사TV'의 구독자 수는 56만명. 책 관련 채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숫자다. 전무후무한 팬덤을 구축하며 출판 마케팅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꿨다. 편집자와 마케터가 직접 등장해 재치 있는 입담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책을 직접 홍보하기보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거나 게임, 월드컵, 토론 등 익숙한 형식에 책 이야기를 넣는다.
흐름출판의 쇼트폼 콘텐츠 '출판일타강사' 시리즈. 홍보팀 마케터들이 '일타강사'로 변신해 책 속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흐름출판 제공
흐름출판은 쇼트폼 콘텐츠 '출판일타강사' 시리즈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화장실에 집착한 이유'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 알고 보니 저자가 사기꾼?' 'SK가 50년 동안 남몰래 후원한 곳' 등 책을 먼저 소개하지 않고 책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소재를 골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홍보팀 마케터들이 '일타강사'로 변신해 화이트보드에 키워드를 적으며 강의하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표지는 시청자의 궁금증이 절정에 이를 때쯤, '더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라'는 식으로 영상 마지막에 공개한다.
박중혁 흐름출판 홍보팀 과장은 "책이 워낙 많이 나오고 유사한 책도 많아 특이점을 찾기 어려운 시대라 색다른 콘텐츠를 기획하고자 했다"며 "영화 예고편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다루듯 책에 담긴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뽑아 영화 예고편처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릴스(인스타그램 쇼트폼 콘텐츠)는 초반 3초가 정말 중요하다. 3초 안에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채널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조회수가 잘 나온 콘텐츠는 100만뷰가 넘는다. 이 같은 파급력은 책 판매와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흐름출판의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릴스 공개 직전 주 126부가 판매됐지만, 공개 후 첫 주에는 399부가 팔렸다. 2주 차 350부, 3주 차 300부, 4주 차에는 345부가 팔리는 등 이후에도 노출 전보다 높은 판매량을 유지했다.
지난 6월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된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성인 종합독서율이 역대 최저 수준(38.5%)으로 떨어졌지만 출판사의 굿즈나 콘텐츠는 관심이 뜨겁다. 국내 최대 규모 책 행사인 서울국제도서전은 해마다 15만명 안팎이 찾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에 대해 박 과장은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이런 문화를 접하고 도서전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출판시장 전체에는 플러스 알파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독자 유입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기에 출판사들도 자체적인 콘텐츠와 굿즈를 제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의 1인 출판사 '담다'의 인스타그램. 1만3천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담다 인스타그램 캡처
◆1인 출판사 많은 대구선 '그림의 떡'…독자와 직접 만난다
서울·파주에 위치한 출판사들이 자본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무기로 독자 확보에 나서는 가운데 대구의 작은 출판사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1인 출판사 '담다'의 김수영 대표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7년 넘게 꾸준히 출판사 소식지와 카드뉴스를 제작·발행하고 있다. 꾸준히 콘텐츠를 올려온 결과 인스타그램 채널은 1만3천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SNS 마케팅이 곧바로 도서 판매나 매출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는 "SNS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체감하지만 SNS 때문에 책이 판매됐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책 판매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SNS로 이전보다 도서 판매량이 늘었다고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고 했다.
지난해 도서출판 담다에서 개최한 '담다 페스티벌'. 독자, 작가, 출판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행사다. 담다 제공
대구의 출판사 대다수는 1인 또는 소규모 기업이라 수백만원에 달하는 배너 광고나 대규모 마케팅에 뛰어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만큼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큰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대구출판협동조합 조합장이기도 한 이웅현 도서출판 부카 대표는 "대형 출판사가 같은 비용으로 100의 효과를 본다면 지역의 중소형 출판사들은 10의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출판사들은 독자와 만나 책을 직접 알릴 수 있는 행사에 사활을 건다. 신중현 학이사 대표도 "지역 출판사 도서는 존재 자체를 몰라서 못 읽는 경우가 많다"며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리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방안"이라고 제언한 바 있다.
'담다'는 지난달 부산북앤콘텐츠페어, '부카' 역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다. 다만 도서전 참가 역시 소규모 출판사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 부담이 든다. 이웅현 부카 대표는 참가비와 5일간의 체류비 등을 합쳐 300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책만으로 독자의 발길을 붙잡기 쉽지 않아 굿즈도 함께 선보였다. 이 대표는 "책보다 굿즈 판매량이 3배 더 많았다"며 "굿즈라도 갖고 나가야 출판사와 책을 알릴 수 있어 도서전에 참가할 때마다 어떤 굿즈를 가져갈지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도서출판 부카의 부스. 부카 제공
대구출판지원센터에서 매년 지원사업을 통해 도서 제작, 매체 홍보, 전시회 참가 등을 돕고 있지만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대구에 출판지원센터가 있고 지원사업이 이뤄지는 건 좋지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처럼 출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어떤 기관의 부수적인 업무를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전문성이 조금 약하다고 느꼈다"며 "출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적인 지원체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역 출판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독자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대구출판협동조합은 오는 12일 대구도서관 앞에서 제3회 대구도서전을 연다. 20여 개의 지역 출판사, 영남권 대학 출판부, 독립 출판사 등이 참여해 도서 전시 및 판매, 지역 작가 릴레이 북토크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현희
문화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