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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희의 쉰셔널지오그래픽] “같이 가요!” 10㎞ 뛰며 급결성된 50+ 연대기

2026-09-11 06:00
2018년 9월 스페인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모습. 중년을 넘어섰지만 활기찬 여성 선수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트레킹과 등산을 하며 건강관리에 집중하게 됐다.

2018년 9월 스페인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모습. 중년을 넘어섰지만 활기찬 여성 선수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트레킹과 등산을 하며 건강관리에 집중하게 됐다.

지난달 23일,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10㎞ 달리기에 참가했다. 오전 5시30분, 육상진흥센터 앞에 모인 참가자들의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풍경이었다. 다들 곧 쏘아 올려질 로켓마냥 에너지가 넘쳤으며, 이 기세대로라면 대구 너머 중앙아시아 벌판까지 달려간다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미국과 멕시코 등에서 온 그녀들은 65세에도 다리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남자의 경우 90세를 넘긴 참가자들도 있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뿐만 아니라 그 밝은 웃음과 생기 넘치는 눈빛은 이 대회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이 신경 쓰지 않고 달리는 당신이 국가대표!' 바로 이런 메시지 아닐까.


사실 나의 이 대회 참가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시에서 이 대회를 유치하고자 스페인 말라가대회에 갈 때 함께했다. 회사가 육상을 후원하는 바람에 동행했지만 이 일로 내 인생관이 바뀌었다.


당시 우리 엄마는 무릎이 아파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셨고, 집안 전체가 '꼬랑꼬랑 팔십'을 무슨 가훈마냥 실천하고 있었다. 나이 들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2018년 스페인에서 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리 엄마 연배의 분들이 핫팬츠를 입고 다리 근육을 키워 도시를 뛰어다녔다. 우리 엄마는 소화 안 된다며 매끼 밥을 삶아 드셨는데, 그 외국 할머니들은 단출한 조식뷔페도 불만 하나 없이 한 그릇씩 잘도 드셨다. 그리고 일단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옆 사람이 물잔을 쏟아도 싫은 내색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배려해주었다. 한국의 여성들이 갱년기를 넘기며 우울과 예민함으로 세상과 척지는 데 비해 그녀들은 너무도 활기차게 인생을 긍정하고 있었다. 강함과 밝음을 한 몸에 지닌 여성은 아름다웠다. 난 한 줄의 후기를 내 카톡 프사에 올렸다.


"아프지 말자! 내 다리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이렇게 하여 나는 둘레길 걷기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최근엔 지리산과 일본의 해발 3천180m 야리가다케 산행까지 감행하게 됐다.


2026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선수복과 배번.

2026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선수복과 배번.

말이 다른 데로 갔는데, 여하튼 이 스페인 말라가 대회 이후 8년 만에 대구에서 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나이 들수록 건강하고 밝은' 세계인들을 만났다. 드디어 땅! 출발을 했고, 난 얼마 못 가 선수단의 가장 후미로 밀렸다. 그때 뒤에서 누가 날 불렀다.


"같이 가요."


돌아보니 내 또래쯤 보이는 여성이 따라오고 있었다. 옆에는 또다른 중년여성 한 분이 계셨다. 이렇게 하여 여성 세 명은 마치 쉰 살 걸그룹처럼 한 팀을 이뤘고, 코스를 따라 함께 뛰기로 했다. 그 중 리더는 가장 맏언니 격인 지역가수 S. 이 와중에도 나이를 깠고 통성명을 했다는 것에 놀라지 마시라. 우린 각자의 출전 사연까지 1인 10초로 설명을 끝냈고, 이로써 지금 이 순간 동행할 운명임을 직감했다. 이 대회에 혼자서 해외사이트 결제를 하며 출전했다는 J는 완주에 대한 열망이 컸다. 뒤따라오는 경찰차를 보고 "내 걱정은 마시고 먼저 가세요~"라고 소리쳤다.


가수 S, 첫 출전인 J, 두 번째 경험자인 나, 이렇게 셋은 그날 인생 최대로 서로를 응원해줬다.


"우리 오늘 죽어도 끝까지 가자. 쪽을 팔아도 끝까지 팔자!"


"웃기지 마라, 내 새벽부터 붙이고 온 속눈썹 떨어진다."


"언니는 폼이 소싯적 좀 뛰신 것 같아요."


"했지, 풀코스도 했지. 저 멀리서 보니까 못 뛰는 두 사람이 보이길래 함께해 줄라고 맘 먹었다. 내가 이런 사람들 두고 못 가거든."


"언니 고마버예. 우리 나중에 식사라도 하입시더."


"야야, 다 뛰야 밥을 안 먹겠나. 내 따라 해 봐라. 호흡은 이렇게 후후!"


"후후."


"저 앞에 간 사람들보다 우리 셋이 인물이 제일 낫다. 아이고 이쁜 것들, 힘내자."


"네~ 언니."


누가 그랬나. 학연 지연보다 여연(女戀)이 강하다고. 힘들 때 함께하는 여성연대는 무슨 포도당 주사를 맞은 듯 힘을 줬다.


반쯤 갔을까. 저 앞에 누가 보인다. 남자다! 맏언니 S가 소리쳤다.


"어이 둘째야, 가서 저 남자 따라잡아라."


별명이 '동네 두부'였던 나는 부스터를 단 듯 힘을 내 그를 따라잡았다. 가까이서 본 그는 또다시 내게 감동을 줬다. 나이 94세, 오사카에서 오셨단다. 뛰는 속도로 보아 한눈에 봐도 우리 그룹으로 모셔야 했다. 이렇게 우리는 아이돌 그룹 결성하듯 도로 위에서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같이 뛰었다. 결승선에서 할아버지와 나는 다시 만났다. 사진을 찍었다. 오래 사시라 말하고 싶었는데 일어는 몰랐고 눈빛으로 서로 알아들었다.


쉰을 넘긴 여성 세 명과 구순의 일본 할아버지 선수가 지난달 23일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에서 꼴찌그룹을 형성해 함께 뛰었다. 우리에겐 함께 뛰었다는 세상 뿌듯한 연대감이 생겼다. <일러스트=구글 Gemini>

쉰을 넘긴 여성 세 명과 구순의 일본 할아버지 선수가 지난달 23일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에서 꼴찌그룹을 형성해 함께 뛰었다. 우리에겐 함께 뛰었다는 세상 뿌듯한 연대감이 생겼다. <일러스트=구글 Gemini>

사실 지금에야 말하지만 난 다 뛸 생각이 없었다. 처음 출발만 하고 참석의 미를 거둘 참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나 함께 가자는 사람, 옆에서 구령을 부르며 기운을 북돋우는 이들, 아흔의 노구에도 몸소 뛰는 할아버지, 이 세 분으로 인해 나는 완주란 걸 해봤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혼자 했다면 그냥 몸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응원을 받으며 옆에서 누가 '끝까지 함께 가자' 해준 덕분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생각만 하면 실실 웃는 사람이 됐다. 오사카 할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세 명은 추석 즈음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더운 길 위에서 외친 그날의 끈끈한 연대를 추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배웠다. 함께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냥 두었더라면 포기했을 것인데 같이 가자고 말해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꼴찌 기록의 내가 배웠다고 할까.


더운 여름 매미 소리 아래 들었던 한마디 "같이 가요", 다시 나의 카톡 프로필 메시지로 만들어본다. 곳곳에 재난이 생기고 격차가 생기지만, 그날의 달리기처럼, 우리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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