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40℃에 육박하는 무더위 끝에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가야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동곡 '할매집'에 들렀다. 할매집은 국수를 직접 손으로 빚어 삶아내는데,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무에 불을 지펴서 땐다.
나는 그 불 때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불쏘시개가 불을 충분히 먹지 않았을 때 나무를 얹으면 연기만 날 뿐 불은 붙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부지깽이로 함부로 뒤적여서도 안 된다. 불꽃이 일 때를 기다려 자근자근 눌러 불을 다스려야만 한다. 사랑이나 증오도 이와 같으리라.
소박맞은 외숙모는 불을 때는 재주가 없었다. 새댁이었을 때 부엌에 들어가면 이내 눈물을 질금거리며 뛰쳐나오거나 연기 나는 아궁이에다 부지깽이를 집어던지곤 했다. 부부간 불 때기도 서툴렀던 모양이었다. 외삼촌은 첫날밤부터 그녀를 외면했다. 무슨 연유인지 개 닭 쳐다보듯 아예 곁을 주지 않았다. 궁합이란 게 이럴 때 쓰는 말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러나 외숙모를 좋아했고, 따랐다. 그녀 몸에서 나는 분 냄새, 머리에 예쁜 핀 꽂아주던 일, 한사코 내치기를 고집하던 외삼촌 앞에 마지막으로 거칠게 침 뱉던 일 등이 기억에 있다.
가게 밖으로는 반갑게도 연둣빛 논이 있었다. 갓 모심기를 한 듯 찰랑찰랑 물이 넘치는 논에 어린 벼가 고르게 숨 쉬며 꽂혀 있었다.
"모심기 하셨네. 그렇죠?"
나는 엉덩이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요즘은 왠지 사소한 일에도 울컥하고 목이 멘다. 벼가 거기,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는 게 눈물겨웠다.
국수물을 위해 불을 때던 할매는 그러나 무뚝뚝하게, "농사 암만 지어 봤자 뭐 할끼고. 비료값도 안 나오는 거."
치솟는 불을 부지깽이로 거칠게 잠재우더니, 주섬주섬 국수를 식탁에 갖다 놓는다. 나는 말없이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든다. 국수를 한 가락씩 건져 올리다 보니 뜻 모를 서러움이 울컥 치민다.
삶이 왜 이리 힘겨운가. 누구였던가, 삶은 고해(苦海)라 했던 사람이. 침을 뱉던 외숙모는 어디서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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