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0912023317960

[주말&여행] 경북 성주 아트스페이스 모리…폐공장에 뜬 기적의 달 항아리

2026-09-12 09:20
왼쪽은 전시장인 아트리움 모리, 오른쪽은 카페 트리팔렛. 2022년 대규모 폐 공장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핑크 곰 모리베어는 손영복의 작품이다.

왼쪽은 전시장인 아트리움 모리, 오른쪽은 카페 트리팔렛. 2022년 대규모 폐 공장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핑크 곰 모리베어는 손영복의 작품이다.

목 백일홍이 흐드러진 도로를 달리다 샛길로 빠져 나간다. 분명 처음이 아닌데 길이 변했나, 조금 낯선 눈초리로 앞선 길을 쫓는다. 한개마을을 지난다. 오래된 목골조의 익숙한 집들을 보니 낯섦이 사라진다. 곧 월항면소재지다. 소설 같은 이름을 가진 몇 개의 다방과 분홍색 외벽의 여관이 번쩍 눈에 띄고 모퉁이의 편의점은 너무 고요하여 그림 같다. 이런 일상의 공간들이 드물어지는 마을의 끝자락, 자연이 제 스케일대로 펼쳐지는 그 푸르름 속에 중소 규모의 공장들이 쑥쑥 자라나 있다. 아, 이건 생각지 못한 일이다. 속삭임도 없는 일요일, 휴일의 공장들은 심해보다도 고요한데 어디선가 낮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저기다, 아트 스페이스 모리.


공장을 리모델링해 추가로 개관한 기획전시장 아트스페이스 울림. 오른쪽에 직각으로 이어지는 공장동은 문화상업 공간인 아틀리에 샘이다.

공장을 리모델링해 추가로 개관한 기획전시장 아트스페이스 울림. 오른쪽에 직각으로 이어지는 공장동은 문화상업 공간인 아틀리에 샘이다.

◆ 복합문화예술공간, 아트 스페이스 모리


월항면소재지는 안포리, 그 끝에서부터 유월리가 시작되는 자리에 '아트스페이스 모리'가 자리한다. 아트스페이스 모리는 전시장과 카페, 레지던시 등이 둥그스름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모리는 신라시대 산을 일컫는 옛 우리말'이라고 한다. 숲이라든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든가, 메멘토 모리 정도가 떠올랐는데 신라 시대 산을 부르는 말이라니 특별히 신선하다. 정문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브런치 카페인 '트리팔렛'이다. 그 옆에 높직이 곡진 건물은 전시장인 '아트리움 모리'다. 사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출입구 캐노피 위에 올라앉은 분홍 곰일 것이다. 곰의 이름도 '모리'다. 모리는 '여리고 섬세하고 투명하고 순수한 캐릭터로 자신의 존재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개성 넘치고 발랄한 예술가들을 상징'한단다.


유촌 창작스튜디오. 매년 3명의 입주 작가를 선정하여 작업 공간과 숙소를 비롯해 개인전 및 그룹전 개최, 활동지원금 지급, 워크숍, 평론가 매칭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유촌 창작스튜디오. 매년 3명의 입주 작가를 선정하여 작업 공간과 숙소를 비롯해 개인전 및 그룹전 개최, 활동지원금 지급, 워크숍, 평론가 매칭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곳은 원래 제조 시설이 있던 곳이다. 알기로는 목재공장이었다. 2022년 공장을 정리하고 새롭게 지은 것이 전시장 '아트리움 모리'와 브런치 카페 '트리팔렛'이다. 아트스페이스 모리는 이 두 개의 건물로 시작됐다. 중앙 주차장 저편의 가로로 긴 건물은 '아트스페이스 울림'이다. 2024년 5월 공장을 리모델링해 추가로 개관한 기획전시장이다. 내부는 3개의 전시실과 작은 체험 교육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오른쪽에 직각으로 이어지는 공장동은 문화상업 공간인 '아틀리에 샘'이다. 샘에는 정원 연구소, 민화 수업을 한다는 다온 공방, 도자 아트샵 등이 입점해 있다.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하고 직접 만들어 보는 일련의 경험공간이 샘 속에 있다. 불 꺼진 작고 텅 빈 방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대관 전시장이다.


아틀리에 샘 뒤편의 또 다른 공장동은 레지던시 작가 작업실인 유촌 창작스튜디오로 꾸며져 있다. 전국적으로 축소되어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으로 2024년 4월에 운영을 시작한 곳이다. 매년 3명의 입주 작가를 선정하여 작업 공간과 숙소를 비롯해 개인전 및 그룹전 개최, 활동지원금 지급, 워크숍, 평론가 매칭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왜 유촌인가 했더니, 유촌은 유월리의 자연마을 이름이다. 버들골, 버들이, 유등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 주변의 산세가 한 그루의 버드나무같이 교교하게 뻗어 있고 물가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이 정확히 성주 월항면 유월리 유촌마을인가 보다. 주어진 것과 매년 새로워지는 것 사이에서 창작스튜디오가 기대하는 것은 모두의 성장이다.


울림의 메인 홀에는 미술 서적으로 채워진 대형 책장과 쉴 수 있는 좌석이 있다. 골똘히 앉은 생각하는 모리는 인기 많은 포토존이다.

울림의 메인 홀에는 미술 서적으로 채워진 대형 책장과 쉴 수 있는 좌석이 있다. 골똘히 앉은 '생각하는 모리'는 인기 많은 포토존이다.

◆ 모리와 울림


아트리움 모리 앞에 수공간이 있다. 이름이 없어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 물 위에, 또 물속에 달 항아리가 놓여 있다. 성주가 고향이라는 도예가 김종훈의 작품이다. 성주 수륜면 백운리의 고령토를 직접 채굴하고 분석해 전통 가마 방식으로 제작한 달 항아리라고 한다. 월항의 모리에 달이 휘영청 하다. 월항(月恒), 언제나 변하지 않는 달빛이라고 해석해도 될까. 월항과 달 항아리를 나란히 불러보니 둘의 운이 썩 잘 어울린다. 아트리움 모리에서는 현재 이재호 작가의 개인전 '야치마나이(저질러버려)'가 열리고 있다. 복도와 홀, 계단 벽 등에서 볼 수 있는 설치, 회화, 조각 등의 작품들은 아트리움 모리의 소장품들이다. 2층에는 '모리 컬러링 존'이 있다. 방 안이 전부 모리베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마음으로 색칠한 모리베어 그림들이다. 몇몇 아이들이 모리베어 색칠하기에 푹 빠져 있다. 매달 이달의 모리 아티스트를 선정해 소정의 모리 굿즈를 선물해 준다고 한다.


아트리움 모리의 창밖으로 울림과 샘, 그 뒤편의 공장들과 우뚝한 산정이 펼쳐진다. 울림은 울창한 숲, 메아리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볼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울림의 회랑 상부 파사드가 숲 같다. 울림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9m 높이의 천장이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메인 홀에는 미술 서적으로 채워진 대형 책장이 있고, 누구나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물결치는 좌석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생각하는 모리'가 골똘히 앉아 있다. 저는 심각한 표정인데도 주변을 경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트리움 모리 2층의 모리 컬러링 존. 방 안이 전부 모리베어다. 매달 이달의 모리 아티스트를 선정해 소정의 모리 굿즈를 선물해 준다고 한다.

아트리움 모리 2층의 모리 컬러링 존. 방 안이 전부 모리베어다. 매달 이달의 모리 아티스트를 선정해 소정의 모리 굿즈를 선물해 준다고 한다.

현재 울림 전시장에는 부산 출신 작가 프레리의 '오디너리 데이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의 기록' 전이 열리고 있다.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산책길, 나무 그늘 아래 머무는 고요한 시간, 하얀 꽃잎과 파란 여름, 느리게 흘러가는 하루, 황금빛 노을, 푸른 밤의 정원 등 발리 섬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강렬한 색채로 담은 회화 작품들로 작가의 섬세하고 행복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시다. 전시장 한쪽에는 '긴 여름, 황금빛 노을'의 그림 속 한 장면이 입체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관람객은 그림 속을 거닐며 풍경의 일부가 된다. 프레리의 행복한 그림 속을 빠져나오면 걸음은 자그마한 체험 공간으로 연결된다. 체험 프로그램은 오일 파스텔로 그림 그리기, 나만의 캐릭터 모리베어 색칠하기, 액막이 명태를 만드는 섬유공예 등이 있다. 아이들이 도르르 달려가 책상에 앉는다. 전시장의 체험 공간에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저들의 손끝에서 탄생할 대담한 세계를 즐거이 상상하게 된다.


아트리움 모리의 창밖으로 울림과 샘, 그 뒤편의 공장들과 우뚝한 산정이 펼쳐진다. 이곳은 원래 제조 시설이 있던 곳으로 울림의 건물 형태에서 기원을 엿볼 수 있다.

아트리움 모리의 창밖으로 울림과 샘, 그 뒤편의 공장들과 우뚝한 산정이 펼쳐진다. 이곳은 원래 제조 시설이 있던 곳으로 울림의 건물 형태에서 기원을 엿볼 수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은 지역사회의 문화, 예술, 교육, 복지 기능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지역의 새로운 문화 인프라를 의미한다. 예산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보통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수행된다. 그러나 아트스페이스 모리는 제조공장 대표가 사재를 털어 만든 공간이다. 부지에는 아직 공장건물이 남아 있고 향후 어떻게 쓰일지는 구상 중이라 한다. 갑자기 모리의 분수가 솟아오른다. 물은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물속의 달은 깨져 파편으로 반짝이고, 물 위의 달은 물방울을 마시며 신선해진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30번 달구벌대로 성주방향으로 간다. 성주대교 건너 계속 직진하다 신부교차로에서 왜관, 월항 방면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직진한다. 한개마을 앞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월항면소재지다.월항면행정복지센터 방향으로 우회전해 약 1㎞ 가면 오른쪽 길 가에 아트스페이스 모리 입구가 있다. 이용시간은 평일 정오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주말 및 휴일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 아트리움 모리와 아트스페이스 울림 입장은 통합 3천원, 카페 이용자는 2천원이다. 아트스페이스 울림의 프레리 개인전은 오는 11월 1일까지, 아트리움 모리의 이재호 개인전은 오는 10월 18일 까지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