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국제정치경제의 씨줄과 날줄이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번 주 UN 총회를 계기로 트럼프-시진핑의 G2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세계 무역질서와 AI를 비롯한 첨단과학기술 경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란 전쟁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지 자못 궁금하다. 미국과 일본, 미국과 GCC(아랍 걸프회의) 6개국 정상회담, 이란의 대통령도 트럼프와 만난다. 이재명 대통령도 트럼프와 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매듭짓지 못한 대미 투자와 호르무즈 파병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11월 중국의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 전후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국부의 90% 이상을 국제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남북간 군사적 대치가 치열한 우리의 입장에서 국운이 걸려있는 슈퍼 외교 시즌이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란 전쟁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곧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이 7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세계 원유와 가스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걸프만과 호르무즈 해협 수호에 미국이 실패하고 있다. 약 62조원에 이르는 전쟁 비용을 쏟아붓고도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랍지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력(extended deterrence)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전통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적인 지원 요청을 일거에 거절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친이란계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까지 미사일로 공격했다. 다급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외면당했다. 양국은 군사적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70년 이상 '고도의 전략적, 군사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작년 11월 전략적 방위 협정(SDA)을 체결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F-35 등 최첨단 무기를 200조원어치나 구입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후티 반군과 뒷거래를 했다. 미국 우선주의, 거래주의적 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냉엄한 국제질서의 현실이다.
최근 미국의 보수적 연구기관인 '국방우선연구소'(Defence Priorities)의 제니퍼 캐버너(Jennifer Kavanagh)의 논문이 관심을 끌고 있다. 요지는 미국의 핵심 이익(본토 방어)을 지키기 위해 미군을 제1도련선(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에서 제2도련선(괌,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등)으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방위 공약을 대폭 축소해서 한국과 일본 등과의 상호방위조약을 종료하고 단순한 안보 파트너십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충분히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군사·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미군의 한국 주둔 및 방위 공약은 불필요한 위험과 비용을 초래하므로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른 냉정한 대처와 준비가 필요하다. 전시작전권의 조기 전환, 종전과 평화체제 선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인 자주 국방의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북한의 핵에 대응한 핵 억제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입장도 변화하고 있다. '한반도 방위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한국의 근현대사는 우리의 내재적 능력보다는 외생변수인 국제질서의 변동에 따라 결정되어 왔음을 처절하게 인식한다면 작금의 국제정세 변화를 예민하게 분석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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