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면 또 전화하이소” 출동 1만6천번 영양군 ‘효자손 행정’
군 모든 지역을 다니며 생활민원을 처리해주는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은 2019년 개설됐다. 취약계층에는 10만 원 이하의 재료비를 무상 지원한다.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원들이 영양읍 진막골 오재목씨 집에서 전등을 교체하고 있다.
2인1조 2팀 연간 2천건 이상 민원처리
8년째 전등·보일러 등 일상 수리 지원
기술지원 넘어 정서적 고충까지 살펴
초고령화 농촌지역 맞춤형 복지 실현
전국 지자체서 벤치마킹 문의 잇따라
영양읍 감천리 진막골의 한 주택, 할머니는 찾아온 손님들을 작은방으로 안내한다. 전등 스위치를 켜니 천장에 붙어있는 삼파장 형광등이 계속 깜빡거린다. 손님들은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기사들, 그들은 고장 난 전등을 LED램프로 교체한다.
'세는나이'로 아흔인 할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혼잣말처럼 이렇게 얘기한다. "옛날에 해놓은 게 전부 오래되니 고마(그만) 옳게 안 되더라고, 사람 나(나이) 먹는 식으로……." 집안에 있는 물건, 설비들이 낡아서 자꾸 고장 나는 것이 마치 어르신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기능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20여 년 전, 구식 형광등을 신형 삼파장 형광등으로 직접 바꿔 달았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걸상 위에 올라서서 거들어주는 아내와 단둘이서,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새 전등을 달았던 그날의 기억이.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은 운영기간만큼 노하우도 쌓여 서비스 질도 향상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 지자체들이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영양군을 방문하기도 한다.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원들이 영양읍 진막골 오재목씨 집에서 전등을 교체하고 있다.
찾아와 도움을 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지나간 세월에 대한 향수가 담긴 할아버지의 말에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김기호 팀장은 바로 "예, 안 되면 또 전화하시이소"라며 부담 갖지 마시라고 넌지시 얘기한다. 그러고는 "예전에 농사도 마이 하셨지요. 경운기 몰고 시장에 팔러 나오시기도 하고"라며 화제를 돌린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담배농사 짓던 얘기, 외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 얘기,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지인 얘기로 번져나간다. 단순히 전등만 갈고 가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또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펴주는 '젊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았을 것이다.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은 돌아가는 길에 진막골경로당에 들러 화장실의 청소용 고압 분사기 호스를 메탈호스로 교체해 주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경로당 앞 정자에 모여 있던 할머니들로부터 호스에서 물이 샌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처리한 것이다. 경로당 할머니들은 "전화만 하면 바로 와서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참 친절하다" "아들딸같이 잘해준다" "그보다 낫지. 자식들이야 전화로 말만 하지 오지도 못하니까" 등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에 대한 칭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양군 생활민원과 소속의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은 전등 교체, 수도꼭지 수리, 방충망 보수 등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편을 찾아가 해결해 주는 현장 행정서비스팀이다.
2019년 영양군은 군민 생활 깊숙이 다가가는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을 만들었다. 현장 기사는 2인1조 두 팀으로 편성돼 있으며, 군 전역을 다니며 생활민원을 처리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65세 이상 독거노인 가구 등 취약계층에는 10만 원 이하의 재료비를 무상 지원하고 있다. 일반 군민들도 재료를 준비해서 전화로 신청을 하면 처리해주고,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으면 재료비만 받고 처리해준다. 땅을 파거나 벽을 허물어야 하는 큰 공사나 전문가의 기술이 필요한 일은 업체를 알선해 주기도 한다.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원이 영양읍 진막골 경로당 화장실 변기샤워기를 수리한 후 사용해보고 있다.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의 처리실적은 2021년부터 매년 2천 건을 넘고 있으며, 운영 8년째를 맞은 올해 누적 처리 건수가 1만6천 건을 넘어섰다. 그중에는 이런 사례도 있었다.
"몇 년 전 퇴근 무렵에 전화가 왔습니다. 수비면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 댁에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지내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이리저리 알아봤으나 여의치 않아서 저희 팀으로 연락이 온 거였어요.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때여서 기사들이 바로 출동을 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기름보일러를 수리하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따라 나와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기사들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기사들이나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우리 팀원들 모두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께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해드렸다는 게 뿌듯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민원'이라는 말의 뜻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현행 법률상 민원이란 말은 '국민이 행정기관에 대해 허가·인가 등의 신청, 행정업무에 대한 상담, 운영개선 및 고충사항에 대한 처리 등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행정업무'라는 말을 좁게 해석하면, 전등을 갈고 수도꼭지를 가는 일은 사소한 생활불편 사항이지 '민원'이 아니다. 농촌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던 과거에는 이런 생활불편 사항은 대체로 가족들이, 이웃들이 해결할 수 있었다.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의 민원 처리건수는 1만6천여 건으로, 취약계층 주민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김기호 영양군 바로민원처리팀장이 영양읍 진막골 쉼터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인구는 줄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 초고령 사회로 치닫는 오늘날 농촌지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생활민원'의 범위에 사소한 생활불편 사항을 폭넓게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대표적 사례가 7년 전 영양군의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출범이다.
2025년 영양군의 1인 가구 비율은 43.9%이며, 지난 8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4.3%다. 만약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없다면 노인 가구에서 '생활민원'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외지에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얘기한다 해도 당장 달려올 수도 없고, 자녀들도 달리 부탁할 곳이 마땅치 않아 발만 동동 구를 것이다. 자녀들 마음만 쓰이게 만들 것 같아 전화하기도 꺼려진다. 이웃들 형편도 마찬가지일 테니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이장을 맡고 있는 '환갑 넘은 청년'에게 우리 집만 따로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그냥 견뎌보는 수밖에 없다. 사소한 불편이 쌓이고 쌓이면서 삶의 질은 점점 낮아진다.
이제 영양군에서는 이러한 모습은 크게 줄었다.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주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누적 처리 1만6천여 건이라는 통계는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취약계층 주민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충망이 허술해져서 날벌레가 들어온다거나, 외풍이 심해서 방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어야 하는, 사소하지만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여러 문제들이 전화 한 통화로 바로 해결이 된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전화번호만 있으면 된다.
지금까지의 생활민원 처리 내용을 항목별로 보면 배관설비 3천400여 건, 전기 분야 2천800여 건, 하절기 방충망 2천100여 건, 보일러 설비 1천200여 건, 문고리·손잡이 1천100여 건, 동절기 방풍비닐·단열에어캡 700여 건, 전동스쿠터·휠체어 400여 건, 기타 불편민원이 4천200여 건이다.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의 1t 탑차 내부는 전등, 수전, 알루미늄 방충망, 콘센트, 양변기 부속품 등 온갖 자재로 가득하다. 이동식 건재상을 방불케 한다.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김기호(오른쪽 둘째)팀장과 반원들이 생활민원 처리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일반 군민들은 재료를 준비해 전화하면 민원을 처리해준다.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 여름철 방충망 설치도 집집마다 다른 가옥의 구조에 따라 맞춤형으로 시공하고 있다. 방충망 섀시가 없는 옛날 집에는 창틀 전체를 통방충망으로 막고 출입문 한군데만 열어 놓는다. 겨울에는 방충망을 철거하고 외부에 방풍비닐을 설치하거나 창문에 에어캡을 붙인다. 도움이 더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살펴 새로운 생활민원 항목을 추가하기도 한다. 2024년부터 시작한 안전손잡이 설치는 260건을 넘겼다.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화장실, 욕실 벽에 설치한 안전손잡이는 생활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호응이 좋다.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활동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전국의 지자체들이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올해도 경북 도내 서너 곳에서 다녀갔다. 고령화 비율이 높은 지자체에서 비슷한 조직을 꾸려 운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김기호 팀장은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도시 지역에서는 범위도 넓고 관련 업체도 많아서 어려울 수 있지만, 노령인구 비율이 높은 농어촌지역에는 꼭 필요한 조직"이라며 "영양군 최고의 지역맞춤형 행정복지서비스로 자리 잡은 만큼, 앞으로 더 많은 군민들의 일상 속으로 찾아가 불편함을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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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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