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구 출신 손혜민 작가
노동 소득 한계 느껴 비트코인에 인생 건 사연
AI가 스스로 지갑 열고 돈 쓰는 세상 예고
신간 ‘금융의 종말’ 출간… 블록체인 미래 화두 던져
세계 최초 ‘비트코인 화폐철학과’ 입시 열기 후끈
손혜민 작가가 얼마 전 출간한 책 '금융의 종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는 크립토와 AI가 지배하는 국경 없는 금융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한국의 금융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관기자
약을 다루다 화폐와 인간의 미래를 고민하게 된 사람. 대구 출신 손혜민씨(42)는 작가 겸 금융전문가요, 미래학자다. 북구 산격동에서 태어나 달서구 월배에서 자랐다. 화원여고를 나와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와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그는 병원 약사로 일하다 2021년 비트코인을 알게 되면서부터 삶의 진로를 바꿨다. 비좁은 약국을 나와 집을 팔고 2년간 세계여행을 떠났고, 공부한 것을 설명하려다 첫 책 '비트코인, 그리고 비트모빅'을 썼다. 책을 내기 위해 직접 출판사도 만들었다. 관심은 미래금융산업과 문명의 변화로 넓어지고 있다. 한양대 비트코인화폐철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오태민 교수 등과 '비트코인 없는 미래는 없다'와 '자산 토큰 없는 미래는 없다'를 공동 집필했다. 얼마 전 오 교수와 함께 쓴 신간 '금융의 종말'을 통해 암호자산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금융이 한국에 던지는 과제를 짚었다. '경제적 자유'를 바라며 시작한 공부는 그를 더 많은 질문 앞으로 이끌었다. 손 작가에게 그 여정과 새로운 금융의 미래를 물었다.
▶ 약사에서 미래금융 전문가가 됐다.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4년 방영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다. 2018년에는 블록체인 관련 책도 읽었다. 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 2021년 추석 연휴 때 인천의 한 병원에서 야간약사로 일하다 노동 소득의 한계를 느끼면서 경제적 자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비트코인이 투자할 만한 자산인지 알아보던 중 우연히 오태민 작가의 유튜브 채널 '지혜의 족보'를 봤다. 이후 그때까지 채널에 있던 영상을 몰아보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돈과 금융제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고, '비트코인이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비트코인 화폐철학과'가 특이한 전공인데.
"인문대학에 비트코인 전공학과가 생긴 건 세계 최초가 아닐까. 비트코인을 투자자산으로만 보고 학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비트코인을 공부해보면 화폐와 금융은 물론 인간과 사회에 관해서도 연구할 게 무궁무진하다. 1기로 입학 당시 경쟁률이 3대 1이었는데, 이후 한양대 일반대학원 전체 학과 가운데 줄곧 가장 높은 입시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살던 집까지 정리해 비트코인을 샀다고 들었다.
"비트코인에 눈을 뜨면서 여기에 인생을 걸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가진 자산이라고는 집 한 채뿐이었으니, 집을 정리해 투자할 돈을 마련하고 생활방식도 바꿔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집을 전세로 놓아 비트코인을 사고 약사 일도 그만뒀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더 떨어지자 집을 팔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데 능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비트코인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지 않은 채 가격이 오르는 걸 지켜본다면 더 후회할 것 같았다. 실제로 2022년에는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 60% 정도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사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 비트코인을 실체 없는 투기 대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국가나 은행이 보증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화폐의 본질은 '장부'인데, 계좌이체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누군가에게 10만원을 보내면 지폐가 실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장부에서 잔액은 10만원 줄고, 상대방의 잔액은 그만큼 늘어난다. 실물을 주고받지 않아도 장부의 기록이 바뀌면 돈을 주고받은 것이 되는 거다. 중요한 건 그 장부를 믿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우리는 은행이 장부를 정확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믿지만, 그 신뢰가 언제나 지켜진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 예금 인출이나 송금이 제한돼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 사례가 있고, 초인플레이션으로 평생 모은 돈의 구매력이 급격히 무너진 경우도 많다."
▶ 비트코인은 다르다는 말인가.
"비트코인은 중앙관리자의 보증 없이도 이런 장부가 작동하도록 구현한 최초의 디지털 화폐다. 거래 기록을 여러 참여자가 나눠 보관하고, 누구든 검증 프로그램을 통해 거래가 정해진 규칙을 지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돈을 두 번 쓰거나 발행 규칙을 어긴 거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게다가 기록이 쌓일수록 과거의 거래를 뒤집는 데 필요한 계산 비용이 엄청나게 커져 조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를 '트러스트리스 트러스트(trustless trust)', 즉 '신뢰 없는 신뢰'라고 설명한다. 국가나 은행이 보증하지 않아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검증하며 신뢰할 수 있는 장부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저는 비트코인의 등장이 문명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새 책의 제목이 '금융의 종말'이다. 향후 은행과 증권사가 사라진다는 뜻인가.
"한국 금융이 지금의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산업의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다. 블록체인 위에서 국경과 영업시간을 넘어 거래하는 '온체인 금융'이 커지면서, 국내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도 여러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경과 인허가 제도만으로 국내 금융산업을 지키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한국에는 고객과 자본, 위험을 관리해온 금융회사들의 경험이 남아 있다. 이들이 새로운 시장에 직접 참여하고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를 열어야 한다."
▶ AI가 사람 대신 돈을 쓰는 시대도 다뤘더라.
"AI에게 시장조사를 맡겼다고 생각해 보라. 자료를 찾다 보면 유료 데이터를 구입하거나 다른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빌려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사람이 결제 버튼을 눌러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벗어나 AI가 그 안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 비용까지 지급할 수 있다면 자료 수집부터 분석, 보고서 작성까지 이어갈 수 있다. 여기에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될 수 있다. 즉 AI가 디지털 지갑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의 이용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나는 AI의 발전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넘어, 돈을 쓰고 거래하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 첫 책이 '비트코인, 그리고 비트모빅'인데, 비트모빅은 무엇인가.
"비트모빅은 오태민 작가가 비트코인의 한계를 보완하려고 만든 별도의 암호화폐다. 이름은 비트코인과 소설 '모비딕'에서 가져왔다. 코인을 많이 가진 사람이나 기관을 '고래'라고 부르는데, 비트코인의 초기 고래들을 수면 위로 불러내겠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에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물량이 상당하다. 이 물량이 갑자기 시장에 나오면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모빅의 '고래사냥'은 과거 비트코인 보유자에게 모빅을 청구할 기회를 주어, 잠들어 있던 코인에 여전히 접근할 수 있는 주인이 있는지 드러내려는 구상이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암호화폐, 소위 '김치 코인' 가운데는 활동이 위축되거나 사실상 중단된 프로젝트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지면서 모빅도 가격이 많이 하락했지만, 탄탄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여러 서비스 개발과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책을 계속 쓸 것인가.
"오는 10월에 단행본 '불멸의 화폐'(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될 예정이다. 과학기술을 통해 노화와 질병을 극복하고 인간의 수명과 능력을 확장하려는 사상인 트랜스휴머니즘에 관심이 있다. 수명이 길어질수록 그 긴 삶을 뒷받침할 재산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지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비트코인과 연결해 살펴봤다."
▶ 고향인 대구에서도 독자들과 만날 계획이 있나.
"기회가 된다면 대구에서 크립토가 가져올 문명사적 변화에 관심 있는 분들과 만나고 싶다. 나는 비트코인을 공부하면서 돈을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삶의 방향도 바꿨다. 처음에는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 시작했지만, 배울수록 궁금한 것이 많아졌고 그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하고 싶어 책도 쓰게 됐다. 기술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 것인지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고향의 독자들과 제가 배운 것을 나누고, 이런 변화가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박진관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서울본부장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