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쳐쓰는 정비, 현장선 철거 위주
성주 52% 철거 희망…고령 3년간 수선 8동
엄격한 주거 기준과 예산 장벽에 가로막힌 현실
'살 수 있고 살고 싶은 집' 중심 정책 전환 필요
'빈집을 고쳐 주거자원으로 쓰겠다'는 정부 정책이 농촌 현장의 현실과 겉돌고 있다. 정부 정책은 농촌 곳곳의 빈집을 활용 가능한 주거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는 장기간 방치돼 단순 개·보수만으로 사람이 살기 어렵거나 철거 후 다시 지어야 하는 주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빈집 '몇 채를 정비했느냐'가 아니라, 실제 '정비한 집에 몇 명이 들어가 얼마나 오래 생활했느냐'를 가려내 수요와 정밀하게 매칭하는 방향으로 농촌 빈집 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의 한 농가 빈집. 정부 정책은 농촌 곳곳의 빈집을 활용 가능한 주거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는 장기간 방치돼 단순 개·보수만으로 사람이 살기 어렵거나 철거 후 다시 지어야 하는 주택이 대부분이다. 성주군 제공
◆성주 빈집 389채…5년간 미철거 활용은 10채
정부가 농촌에 방치된 빈집을 고쳐 청년과 귀농·귀촌인 등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주거자원으로 활용하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농촌 현장의 상황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경북 성주와 고령의 빈집 실태를 들여다보면 이런 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
성주군에서 확인된 빈집은 389호, 고령군은 460호다. 하지만 성주군이 2025~2029년 5년 동안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겠다고 계획한 빈집은 10호에 불과하다.
고령에서도 최근 5년 동안 128동을 철거한 반면, 수선은 사업이 시작된 2023년 이후 8동에 그쳤다.
'빈집을 고쳐 사람이 살게 하겠다'는 정책 구상과 '정작 쉽게 고쳐 쓸 집이 많지 않다'는 농촌 현장이 서로 다른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성주군 빈집실태조사에서 확인된 빈집 389호 가운데 일반빈집은 291호, 물리적·구조적 훼손이 심각해 안전조치나 철거 등이 필요한 특정빈집은 98호다.
이후 철거·거주·리모델링·개축 등이 확인된 56호를 제외하면서 정비계획 대상은 333호가 됐다. 이 가운데 일반빈집이 263호, 특정빈집이 70호다.
숫자만 보면 정부가 추진하는 빈집 재생사업을 적용할 주택이 상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계획은 다르다.
성주군이 2025~2029년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기로 한 빈집은 10호다. 외국인 근로자 숙소 3호, 귀농인 임대주택 5호, 공유숙박 1호, 커뮤니티 공간 1호다.
이원익 성주군 건축허가과 건축관리팀장은 "빈집의 경우 대부분 노후 정도가 심해 철거 후 다시 건축해야 할 대상이 많다"며 "단순히 개·보수해서 임대할 수 있는 집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행정통계에서 말하는 '빈집'과 사람이 실제 들어가 생활할 수 있는 '주택'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얘기다.
성주군 성주읍 대흥리의 한 농가 빈집. 성주군은 지역맞춤형 정비 계획 수립을 통한 빈집활용 극대화 방안을 마련,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시행한다. 성주군 제공
◆주민들도 "고치기보다 철거"
성주군 자체 조사에서도 이 같은 현실이 확인된다.
성주군은 2024년 6~7월 233개 마을을 대상으로 빈집 389호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마을이 희망하는 조치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철거 204건, 52.44%였다. 반면 수리·리모델링은 18건, 4.63%에 불과했다.
소유자의 공공매입 동의가 확인된 경우는 16건, 4.11%에 그쳤고 소유주의 의향을 모른다는 응답은 236건, 60.67%에 달했다.
정부가 빈집의 거래와 활용을 활성화하더라도, 주택 자체의 상태와 소유자의 동의라는 두 개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실제 공급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농촌 빈집이 철거되지 않고 방치되는 이면에는 '세금 딜레마'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법상 빈집을 철거해 빈 땅(나대지)이 되면 주택 부속토지일 때보다 재산세가 크게 오른다.
행정안전부가 올해부터 철거된 빈집 터에 대해 최대 5년간 주택 수준의 싼 재산세를 내도록 지방세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현장의 정책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수백만 원의 철거비를 자비로 부담한 뒤 굳이 세금 인상 리스크까지 떠안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성주군의 5개년 정비계획 역시 전체 사업량 74호 가운데 철거가 55호다. 미철거 활용은 10호이며 군은 이마저도 마을 중심이나 주택가에 위치하고 접근성이 좋은 등 활용도가 높은 주택을 대상으로 삼았다.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의 한 농가 빈집. 성주군 빈집실태조사에서 확인된 빈집 389호 가운데 일반빈집은 291호, 물리적·구조적 훼손이 심각해 안전조치나 철거 등이 필요한 특정빈집은 98호였다. 성주군 제공
◆고령 460채…현실에서는 '수선보다 철거'
고령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령군의 2025년 빈집실태조사에서 확인된 주택은 모두 460호다.
1등급 59호, 2등급 284호, 3등급 117호로 조사됐다. 고령군은 1등급을 활용대상, 2등급을 관리대상, 3등급을 정비대상 빈집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정비실적을 보면 활용보다 철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1년 39동, 2022년 29동, 2023년 20동, 2024년 20동, 2025년 20동 등 5년 동안 128동을 철거했다.
반면 빈집 수선사업이 시작된 2023년 이후 수선실적은 2023년 2동, 2024년 4동, 2025년 2동 등 3년간 8동에 그쳤다.
올해도 군은 빈집 20동 철거에 4천만원, 4동 수선에 4천만원을 편성했다. 수선 지원액은 동당 1천만원이다.
별도로 1억7천600만원을 투입해 빈집 11동을 철거한 뒤 해당 부지를 3년 동안 주차장·텃밭·쉼터 등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성주와 고령의 현장은 빈집정책의 현실이 '주택 재생'보다는 여전히 '철거와 정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백승진 고령군 건축과 건축관리팀장은 "전년도에 빈집 정비를 파악했고 빈집정비 용역도 올해 진행 중에 있다"며 "오는 12월 용역이 마무리되면 향후 5년 동안 기본 계획을 잡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의 한 농가 빈집. 성주군이 빈집 389호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 철거가 52.44%였고 수리·리모델링은 4.63%에 불과했다. 성주군 제공
◆"고쳤다가 농촌생활 맞지 않으면 투자비와 처분 골치"
집을 고칠 수 있다고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실제 농촌생활을 고민하는 사람이 어떤 집을 선택하는지를 살펴보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인다.
성주군의 체류형 주거시설 입주를 신청했다가 선정되지 못한 송종열(60)씨는 빈집이 아닌 체류형 주거시설을 선택한 이유를 '깨끗한 시설'과 '저렴한 임대료', 그리고 농촌생활을 먼저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으로 꼽았다.
송씨는 "시설이 깨끗하고 임대료가 저렴한 것도 좋았지만 우선 살아보고 2년 뒤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큰 부담 없이 정리하고 나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신청했다"고 말했다.
귀촌 희망자가 원하는 것이 단순히 '싼 집 한 채'가 아니라는 의미다. 오래된 빈집을 직접 매입하거나 장기간 임차해 돈을 들여 고쳤다가 농촌생활이 맞지 않으면 투자비와 처분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
반면 체류형 주거시설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농촌생활을 경험하고 일정 기간 뒤 정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농촌 주거정책에서 '얼마나 싸게 공급하느냐'만큼 '얼마나 부담 없이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빈집, 외국인 계절근로자 숙소로 활용하자
역설적인 것은 농촌에 새로운 주거수요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성주를 비롯한 농촌에서는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농업현장의 주요 노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이 생활할 적정 숙소 확보가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수백 채의 빈집을 관리하지 못해 철거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농촌에서 일할 사람을 재울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철거해야 할 집과 실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구분하고, 활용 가능한 주택을 실제 수요와 연결하는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빈집을 외국인 계절근로자 숙소로 활용하자는 현장의 목소리 역시 제도의 벽을 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농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E-8 비자 등)의 인권 보호를 위해 엄격한 주거시설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냉난방, 소방시설, 채광, 환기, 남녀 분리 화장실 등 필수 요건을 갖춰야만 고용 허가가 난다.
단순한 도배·장판 교체 수준의 개보수로는 이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워, 지자체 차원에서 근로자 숙소용 빈집 리모델링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과 추가 예산 펀드가 마련되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소규모로 빈집 활용하는 것도 방법"
마을 현장에서는 기존 빈집을 무조건 포기하기보다 살릴 수 있는 집을 선별해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영수 성주군 월항면 안포5리 이장은 "마을의 빈집을 깨끗하게 고쳐 한 집에 계절근로자 2~4명씩 나눠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농촌 인력난을 해결하고 빈집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대규모 집단숙소에 대해서는 다른 고민을 내놨다.
이 이장은 "작은 농촌마을에 갑자기 50명 규모의 공동숙소가 들어오면 기존 주민들이 생활환경이나 마을 분위기의 급격한 변화를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며 "가능하다면 기존 빈집을 활용해 소규모로 나눠 생활하도록 하고 자연스럽게 마을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농가 입장에서는 숙소와 농장의 거리도 중요하다.
손대식 씨(성주군 대가면 54) "농번기에는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작업시간도 일정하지 않다"며 "멀리 떨어진 공동숙소에서 근로자를 매일 태워오고 다시 데려다주는 것보다 농장에서 가까운 마을 빈집을 활용할 수 있다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라오스에서 온 계절 근로자 A씨는 "길게는 8개월 정도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농장에서 가깝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숙소가 가장 좋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숙소도 서로 의지가 된다는 장점은 있지만 농장에서 멀어지면 출퇴근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의 숫자보다 '어디에 있는 집인가'가 중요한 이유다.
◆빈집 한 채 고치는 데도 2천만~3천만원
정부와 지자체의 빈집 정비 예산 현실화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빈집 리모델링 보조금은 통상 동당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 따르면 수십 년간 방치된 농촌 주택의 뼈대를 살리고 단열, 상하수도, 전기 설비를 현대화하려면 최소 4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이상의 실비용이 발생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자부담 비율 탓에, 농촌에 살고 싶은 청년이나 집을 내놓으려는 소유주 모두 선뜻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빈집 한 채를 얼마에 고칠 수 있느냐'보다 먼저 '이 집을 고칠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농촌주택이라도 도배와 장판을 교체하고 화장실과 주방 등을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비하는 데 2천만~3천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추산이다.
그러나 모든 빈집을 이 비용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주군의 5개년 계획만 봐도 미철거 빈집 10호를 활용하는 데 계획된 사업비는 모두 5억4천900만원이다. 사업별 예상비용은 주택 상태와 활용목적에 따라 1천500만원에서 1억1천600만원까지 큰 차이를 보인다.
지붕이나 골조, 전기, 상하수도, 정화조 등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면 철거 후 신축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빈집정책의 기준이 '몇 채가 비어 있는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철거해야 할 집은 몇 채인지, 대규모 수선이 필요한 집은 몇 채인지, 일정 수준의 개·보수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은 몇 채인지, 소유자가 임대·매각에 동의하는 집은 몇 채인지, 그리고 그 집을 실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함께 파악해야 한다.
활용할 수 있는 빈집의 운영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사> 산업경제개발연구원 최명선 책임연구원은 "군이나 농협, 고용 농가 등이 일정 기간 빈집을 임차하고 관리와 원상복구를 책임지는 이른바 '책임임차형'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면서 "귀촌인에게는 단순히 낡은 집 한 채를 싸게 제공하기보다 체류형 주거시설처럼 적은 위험으로 일정 기간 살아보고 정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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