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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時時刻刻)] ‘내 사람 고르기 된’ 대법관 임명, 착각이다

2026-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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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법관 한 사람의 인선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 8월1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잇달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면서 시작됐다. 대법원은 국민 천거와 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 및 의견 수렴 등을 이미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8월28일 손봉기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대통령실은 제청 과정에서 실질적인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임명권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재제청 요구에 헌법적 근거와 구체적 사유가 없다며 사실상 재제청 요청을 거부했다. 도대체 헌법이 정한 권한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에게 한 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임명권이 중요하다면, 왜 헌법은 대법관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왜 굳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치고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나눈 것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의 사람이어서는 안 되며,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하는 사법부의 구성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대법관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헌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 추천되고 국회의 동의를 받은 사람을 최종적으로 임명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이 굳이 '제청'을 넣은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제청받았다는 이유로 재제청을 요구하고,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뜻에 맞는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야 한다면, 결국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형식만 남게 된다. 이처럼 대통령이 대법관을 '고르는' 상황이 된다면, 헌법이 대법관 임명 과정에 제청권을 별도로 둔 취지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법권까지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에 종속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기 때문에 헌법은 대통령에게 더 명확한 한계를 설정한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처음부터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히틀러가 총리가 된 순간 독일의 민주주의가 곧바로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후 히틀러가 민주주의의 외형을 이용하면서 그 내부의 견제장치를 하나씩 허물었다는 점에 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원리는 분명하다. 민주적 정당성이 헌법적 한계를 넘는 통행증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무력이나 쿠데타 같은 급작스러운 폭력으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합법적 절차와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외피 속에서 권력자가 제도적 견제를 하나씩 서서히 약화시킬 때 더욱 위험한 와해의 순간에 처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모든 국가권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권력을 여러 기관에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은 있지만, 사법부를 선택할 권리는 없다. 따라서 대통령의 임명권을 '최종 임명권'​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이를 '최종 선택권'​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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