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지하철 객실은 한산했다. 맞은편에는 깔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깔끔한 구두를 신은 남자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하차할 때쯤 가볍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자유로워 보이는 몸짓을 보다 보니 남자가 어떤 노래를 들으며 몸을 흔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묻지는 않았다. 남자가 혼자서 만끽하고 있는 음감회를 중단시키고 싶지 않았다.
승강장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니 거리는 지하철 객실처럼 한산했다. 지하철 객실에서 하차해도 조금 더 큰 지하철 객실로 환승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남자의 몸짓을 떠올리며 둠칫둠칫 몸을 움직였다.
'전국노래자랑'이 방영된 지도 4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슈퍼스타 K' '나는 가수다' '미스·미스터 트롯' '쇼미더머니' 'TOP 밴드' 등 노래 관련 오디션·경연 프로그램의 인기는 꾸준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노래방을 찾는 이들도 많다. 워크맨에서 MP3를 지나 음원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지금까지도 형태만 바뀌었을 뿐 사람에게 노래란 오랜만에 만나도 서먹하지 않고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인연에는 적절한 시절이 있으며 그 시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만남과 헤어짐이 일어난다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응용해서 시절노래라는 말을 지어내 본다. 어떤 노래를 듣기에 적절한 시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 듣게 되는 노래를 시절노래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내게 시월은 유독 시절노래가 많은 달이다. 흐리다고 말하기에는 곧 햇빛이 구름을 비집고 나올 듯하고, 맑다고 하기에는 꽤 많은 먹구름이 하늘의 외곽을 점령하고 있을 때는 10㎝의 '10월의 날씨'를 듣기에 좋다. 양희은이 불렀던 원곡을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가을 아침'은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에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갤 때 틀어놓으면 남은 하루를 조금 더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시간이 들겠지'는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지금 듣기 딱 좋은 노래다. 로꼬는 괜찮지 않은 시간을 담담하게 나열하면서 동시에 흘러가는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노랫말을 랩으로 풀어낸다.
시절인연과 시절노래의 공통점은 한 시절을 기꺼이 '나'로서 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이 시절이 지나면 다시 만나지 못하거나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다음 시절에는 또 다른 인연과 노래가 찾아올 것이다. 시월에는 굳어있던 몸을 조금은 풀고 다가오는 사람과 노래를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떨까? 혹시, 모른다. 누가 보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둠칫둠칫 몸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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