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탈서 입문…영천 금호서 40여 년 공방 운영
경북도청 ‘안민관’·옥간정 현판 18점 복원 등 2천여 점 제작
반가사유상 재현…레츠런파크 영천에 미륵불 대작 구상
반세기 넘게 서각 외길을 걸으며 2천여 점의 현판과 문화재 복원에 혼(魂)을 새겨온 덕산(德山) 김우섭 전통서각명장이 자신의 공방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정해 기자
반세기 넘게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온 덕산(德山) 김우섭 명장(72)이 전통 서각의 맥을 이으며 기록문화의 가치를 전한다.
디지털 기록이 찰나에 사라지는 시대에 수백 년 세월을 견디며 선조의 철학을 웅변하는 전통 서각(書刻)의 거목이 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 전통명장협회 공인 전통서각명장(전예제 19-명163호) 덕산 김우섭 명장이다. 반세기 넘게 칼과 망치 하나로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온 그의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기록문화유산의 역사가 되었다.
안동 하회탈에서 시작된 초발심부터 서울 수련기, 52년 서각 외길, 2천여 점의 현판 제작 및 문화재 복원, 후학 양성, 그리고 레츠런파크 영천(영천경마공원)에 미륵불과 말(馬) 형상을 합성한 대작을 남기고픈 마지막 마무리 소원까지 명장의 숭고한 삶을 조명한다.
◆ 칼끝에 실린 유년의 설렘 : 안동 하회탈에서 8년의 서울 수련, 그리고 서각의 역사성에 눈뜨다
김우섭 명장이 처음 나무에 칼을 대며 장인의 운명을 예감했던 순간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안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학로 길목 공방에서 미술 교사이자 하회탈에 전문 지식이 깊었던 주상찬 선생이 나무를 조각하는 모습을 오가며 바라보던 소년 김우섭은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열망을 느꼈다. 취미 삼아 주상찬 선생으로부터 전통 탈 만드는 법을 배우며 조각에 비범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 그가 서각과 조각의 세계에 첫발을 디디게 된 '초발심(初發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 무렵, 주상찬 선생은 소년의 특별한 소질을 알아채고 서울에서 한국 전통 조각 공장을 운영하던 지인에게 직접 친필 추천서를 써주며 더 넓은 세상으로 그를 보냈다.
서울에서의 8년(19세~27세)은 혹독하면서도 다채로운 담금질의 연속이었다. 일본 등 해외 수출용 동물의 입체 조각부터 각종 정교한 목공예품까지 가혹할 정도의 조각 기법을 연마하며 장인으로서의 단단한 기틀을 다졌다.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자 온 심혈을 기울여 현판을 새기고 있는 덕산 김우섭 전통서각 명장. 남정해 기자
◆ 나무의 결을 읽는 인고의 시간 : 하양 '예당목공방'과 영천 금호 작업실에서 피어난 52년
서울에서의 8년 수련을 마치고 28세가 되던 해, 김 명장은 영천시 금호읍에 작업장의 터를 잡고 공방(현 예당목공방)을 열었다.
올해 72세에 이른 그는 서각에 입문한 지 52년, 영천에서 공방을 운영한 지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나무와 함께 흘려보냈다. 작업실은 웬만한 공장에 버금가는 웅장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고품질 원목과 대패, 각자용 칼과 망치, 단청용 석채 등이 즐비하여 대작 탄생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그가 말하는 서각은 단순히 나무를 파내는 작업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과 결을 깊이 이해하고 응축된 인고를 함께 견뎌내는 작업이다.
명품 서각이 탄생하려면 까다로운 원목 선별과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 명장은 삼척이나 울진 등지에서 은행나무, 느티나무(개목), 벚나무 등 질 좋은 제재목을 엄선하며, 대형 현판 제작 시에는 수입 알마시카(Almasica) 원목을 들여와 정밀하게 집성(Jointing)한다.
베어낸 나무는 비틀림과 균열을 막기 위해 고온 스팀으로 찌고, 건조실에 넣었다 뺐다 하며 한 달 이상 습도를 조절한다. 표면을 바르게 대패질한 뒤 글씨를 배분하고 글씨의 맛과 특징에 맞춰 도구를 구별하여 예리하게 새겨 넣는다.
큰 대작의 경우 제작 기간만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된다. 김 명장은 "복잡한 찜과 건조 과정을 견뎌낸 나무만이 훌륭한 현판이 되듯, 장인 역시 오랜 시련과 스승의 가르침, 고독한 노력을 견뎌내야 비로소 참다운 예술가로 거듭난다"고 말한다.
◆ 수백 년 역사를 칼끝으로 잇다 : 2천여 현판 복원과 경북도청·세계무대에 새긴 족적
김우섭 명장의 칼끝이 남긴 자취는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 방방곡곡 관공서, 사찰, 서원, 정자, 공원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서각 현판의 수만 해도 무려 2천 점이 넘는다.
대표적인 업적으로 영천의 유형문화재 '옥간정(玉澗亭)'의 현판 및 기문 18점 완벽 복원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고증에 따라 10개월간 대형 현판 2점과 중수기문, 상량문, 옛 시운(詩韻) 현판 16점을 완벽히 재연·복원해냄으로써, 원본 유물이 박물관으로 이전된 빈자리를 김 명장의 신작들이 채워 역사적 연속성을 완성했다.
또한 병산서원, 만대루, 고산서원, 사빈서원, 호계서원, 영산서원, 금호서원, 문산서원, 찬경루, 갈뫼루, 하양 육영재, 자인면 한글 현판 등 지역 문화유산의 얼굴을 고스란히 복원·제작했다.
특히 경상북도청이 대구에서 안동으로 이전할 당시 본청의 핵심 표지인 '안민관(安民館)', 경상북도의회 현판인 '여민관(慮民館)', 그 외 경북도청 별관 건물인 '홍익관', '동락관' 현판과 상량문, 이전기문 등을 도맡아 제작했으며, 청사 환경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당시 김관용 경북도지사로부터 표창패를 수여받았다.
경북도청 이전과 함께 주요 청사 내 현판을 도맡아 제작한 덕산 김우섭 명장이 경상북도의회 현판식에 참석해 직접 조각한 의회 현판을 걸어 올리는 모습. 본인 제공
나아가 국제무대와 국가적 기념사업에서도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호치민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교류 현장 체험 후 베트남 국립박물관에 영구보존 지정된 목판을 비롯하여, '세계유교문화축전' 퇴계 이황 좌우명 목판, 군위 삼국유사목판도감소 현판·주련, 대구 달서구 인흥서원 명심보감 목판 모각 등 한국 전통목판 예술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건물 처마 밑에 걸리는 편액은 단순한 명칭 표시를 넘어 선비의 정신과 가치관, 인생관이 담긴 기록유산입니다. 수백 년 뒤 후손들이 내가 새긴 글씨와 칼자국을 바라볼 것이기에, 칼을 쥘 때마다 한 치의 오만함도 없이 엄숙한 사명감으로 역사를 새깁니다."
◆ 가난과 시련을 딛고 선 명장의 길 : 외길 집념으로 일군 전통서각명장의 위상
사단법인 대한민국 전통명장협회로부터 '전통서각명장'으로 공인받기까지 걸어온 길은 혹독한 인고의 연속이었다.
서각과 조각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예술품이기에 결제가 미뤄지거나 기약 없는 가난이 이어지기 일쑤였다. 가정을 이룬 뒤 아내가 처가에서 먹을 곡식을 가져와야 했을 만큼 암담했던 시절도 있었고, 고생을 곁에서 본 아내는 교직에 몸담고 있는 외아들에게 "아빠가 하는 일은 절대 손도 대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모든 경제적 시련 속에서도 김 명장은 전통 서각이라는 외길을 굽힘 없이 걸어왔다. 그 배고프고 외로운 길을 묵묵히 견뎌낸 결과, 대한민국 전통명장협회로부터 전통서각명장 공인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전통 공예의 거목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명장이라는 칭호가 결코 개인의 영예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명장의 자리는 자랑함이 아니라 책임감의 자리입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전통의 맥을 지켜왔듯,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장인의 본분입니다."
◆ 기술을 넘어 인성과 초심을 전하다 : 후학 양성과 문화유산 정신 전승
반세기 넘게 축적한 예도(藝道)의 깊이는 이제 후학들에게 든든한 등대가 되고 있다. 현재 김 명장은 예당목공방에서 30여 명의 제자와 회원을 지도하며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
산림박람회 체험부스 시연, 하양여고 학생 대상 퇴계 선생 좌우명 목판 인출 지도 등 다채로운 교육 활동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조상의 선비정신과 전통 문화예술의 생생한 가치를 전수하고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기술적 테크닉에 앞서 장인으로서의 '초심(初心)'과 인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처음에 품었던 초심을 잃고 교만해지면 우물 안에 갇히게 됩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예술을 통해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장인의 자세입니다."
◆ 국보 반가사유상 재현과 판각 복원 : 칼끝으로 천년 기록문화를 잇다
이와 같이 반세기 넘게 축적된 그의 깊은 예술적 공력과 도구 다루는 손끝 감각은 국가적 차원의 국보급 유물 복원 프로젝트와 민족 고유의 기록문화유산 전승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수십 년의 조각 공력은 국보급 유물 복원과 국가적 판각 시연 작업에서 찬란히 빛을 발했다.
김 명장은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 1호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의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은행나무를 깎아 미륵반가사유상을 완벽히 재현해냈다. 1년 넘는 고된 정성 끝에 완성된 이 대작은 향후 한국과 일본에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은행나무로 완벽히 재현해낸 덕산 김우섭 명장. 1년 넘는 정성 끝에 완성된 이 대작은 일본 왕실 및 양국 주요 인사를 초청하는 한·일 문화교류 특별전에 선보일 목적으로 제작되어 향후 양국에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본인 제공
나아가 경남 밀양 표충사 국보 목판 보수 작업에 직접 참여하여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삼국유사 목판 판각 시연 평가회'와 '훈민정음 해례본 목각 복각 각수 시연 평가회' 등 한국 인쇄·기록문화의 정수를 잇는 국가적 행사의 핵심 각수(刻手) 시연자로 나섰다.
김 명장은 전통 서각의 뿌리와 역사성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청동기·철기시대 명문(銘文),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고려시대의 목판인쇄에 이르기까지 서각은 삶의 자취와 정신을 남기고자 했던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고 강조한다.
칼끝으로 나무 위에 글과 선조들의 정신을 새기는 일은 곧 우리의 위대한 역사적 기록문화를 오늘에 이어나가는 숭고한 작업이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 영천벌에 새길 장인의 마지막 혼 : '레츠런파크 영천'에 미륵불과 말(馬) 형상을 합일한 대작 남기고파
2천년 전 청동기 문화의 숨결과 조선시대 마상재(馬上才)의 호쾌한 역사를 품은 고장 영천. 이곳에 한국마사회 레츠런파크 영천(영천경마공원)이 새롭게 들어서며 지역의 새로운 역사문화 인프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70대의 나이,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김우섭 명장에게는 마지막으로 가슴속에 품은 숭고한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52년 동안 갈고닦은 자신의 모든 서각·조각 공력을 총동원하여, 레츠런파크 영천을 상징할 목각 조형 대작을 완성하여 지역 사회와 후세에 남기는 것이다.
김 명장이 구상하는 대작은 단순한 동물 조각이 아니다.
석가모니나 미륵보살이 출가할 때 말을 타고 궁궐 담장을 넘던 고대의 성스러운 도상(圖象)에서 영감을 얻어, 렛츠런파크 영천의 정체성을 담은 말(馬) 형상의 조각과 자비로운 미륵불을 오묘하게 합성·합일시킨 독창적인 목각 조형물이다.
이는 영천벌의 역사적 상징성과 불교 조각의 숭고함, 전통 목공예의 진수가 하나로 결합된 생애 최고의 정점이 될 것이다.
"이 작업은 제 52년 예술 인생의 모든 혼과 공력을 집대성할 마지막 불꽃이 될 것입니다. 주변 여건만 된다면 나의 온 영혼을 바쳐 레츠런파크 영천에 미륵불과 말의 기상이 어우러진 대작을 새겨 넣고, 대한민국 문화재 역사에 김우섭이라는 이름 석 자와 서각의 위대한 흔적을 영원히 남기고 싶습니다."
나무의 결을 따라 52년간 벼려온 덕산 김우섭 명장의 칼끝은 이제 단순한 나무를 넘어 세월을 견디는 역사로 각인되고 있다. 반세기 인고의 시간으로 새겨진 그의 정교한 서각 작품들은 수백 년 뒤 후손들과 영원히 숨 쉬며 한국 전통 기록문화의 자부심을 증언할 것이다.
남정해
영남의 내일을 열고 심장을 뛰게 할 뉴스를 만들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