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한동대 교수
오래전의 일이다. 외국인 교수가 결혼기념일에 묵을 호텔 예약을 부탁해왔다. 한국말을 못하는 그를 대신해 5성급 호텔에 전화를 걸었는데, 응대가 서툰 예약 담당 직원과의 통화가 길어질수록 좌절감이 커졌다. 국가가 나서서 한국 관광을 홍보하던 시절, 업계를 대표한다는 호텔이 이 정도라니. 매니저를 바꿔 달라고 했더니 외근 중이라 없단다. 결국 예약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해서 매니저에게 서비스 교육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짚었다. 매니저는 "근처에 오시면 차라도 대접하겠다"며 친근함으로 문제를 슬쩍 무마하려 했다. 당시 나를 움직인 것은 잘못된 서비스 앞에서 참지 않는 것이 소비자의 책임이라는 정의감이었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는 단호했지만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는 서툴렀다.
세월과 경험이 쌓이면서 상대의 소통 방식에 내가 끌려갈 필요가 없고, 대화의 온도를 먼저 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정의감을 앞세우는 대신 작은 실험을 해본다. 가령 텔레마케팅 전화가 오면 최대한 친절하게 받는다. 통화가 어려우면 사정을 설명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학생처럼 묻는다. 목소리가 경직된 듯 보이는 상대에게는 다정한 쪽으로 돌아설 여지를 주고, 이미 친절한 상대에게는 온기를 더해 화답한다. 규칙은 하나다. 상대를 판매원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나는 귀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실험의 결과는 놀랍게도 대개 비슷했다. 사무적으로 시작했던 통화도 끝날 무렵이면 집 나갔던 영혼이 돌아온 듯 상대의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며칠 전 이동통신사의 젊은 상담원과 나눈 통화도 그랬다. 설명을 끝까지 듣고 질문한 뒤 이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틀 뒤 다시 통화할 때는 이미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 둔 터였다. 각자 확인한 내용을 하나씩 맞춰 가며 대화를 나누자 어느새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해졌다. 결국 당장 기기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는 꼭 그녀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생각이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나-너(I-Thou)'와 '나-그것(I-It)'으로 나누었다. 상대를 기능과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대하면 '그것'에 머물지만, 고유한 존재로 마주하면 '너'가 된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상담원과 고객도 익명의 역할 너머에서 서로를 한 사람으로 마주하는 순간, 목소리의 결도 말끝에 걸린 표정도 그 하루의 공기도 달라진다. 전화기 너머로 "상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안내를 들을 때마다 간절히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어디서든 상대를 귀하게 여기며, 애써 친절을 지켜내야 하는 자리에서 지치지 않기를.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은 단순한 인사 예절이 아니다. 그 시절의 나는 불친절을 고치려 매니저를 찾았지만, 지금의 나는 친절이 시작되는 자리를 만들고자 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론 가는 말이 곱다고 오는 말이 언제나 고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상대의 말투가 내 품격까지 결정하게 둘 필요는 없다. 먼저 건넨 존중이 상대의 삶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을 지켜주고, 때로는 지친 하루 끝에 작은 빛 하나를 켜기도 한다. 참된 소통은 상대의 친절에 거는 기대가 아니라, 내가 먼저 관계의 문을 여는 용기다. 오늘도 나는 그 문을 열듯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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