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가 9월25~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유시민 작가의 잇단 이재명 대통령 비판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정치 성향별로 크게 달라서다.
먼저 민주당 지지층의 반응을 보자. 63.6%는 '근거 없는 대통령 흔들기'라고 답했다. '건전한 비평'이라는 응답은 28.7%에 불과했다. 반면 전체 응답자의 58.0%는 '건전한 비평'이라고 답했지만 '근거 없는 대통령 흔들기'라는 응답은 30.9%에 그쳤다. 특히 조국혁신당 지지층에서는 94.0%가 '건전한 비평'이라고 평가했고, '대통령 흔들기'는 4.7%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지지층 역시 '건전한 비평'이라는 응답이 81.1%, '대통령 흔들기'는 7.1%에 지나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 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라는 걸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지지층이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 유시민의 비평에 81.1%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게 인상적이다. 유시민이 앞으로 계속 더 치열하게 비판하면서 싸워주기를 바라는 속내가 훤히 보인다는 점에서 재미있지 않은가.
유시민의 비판을 각 정당의 이해관계를 떠나 그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내가 한번 그 입장이 되어 말씀드려 보겠다. 우선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시민이 정말 여태까지 대통령 이재명에 대해 그렇게까지 몰랐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 대통령이 생각한 검찰개혁은 우리가 생각한 검찰개혁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며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우와! 이건 이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과격 발언이다. 이재명은 정말 국민을 속였을까? 검찰개혁과 관련된 이전 발언들을 일일이 들춰볼 필요는 없다. 이재명을 바라보는 유시민의 틀에 답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3개월 전인 6월26일에 제기했던 "지지층이 바란 건 증축이었는데 이재명은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재건축에 나섰다"고 한 비유를 상기해보라. 유시민은 이론을 중요하게 여기는 운동권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재명은 이미 10년 전부터 그것과는 다른 틀을 제시했다.
이재명은 "나는 철저하게 야전에서 살아왔다. 어느 편 이런 것 없다. 무슨 주의자로 나를 규정하려 하지 말아달라. 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파, 좌파 정책 다 갖다 쓸 수 있는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운동권 패러다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정치적 상식을 벗어난 주장이 아닌가. 그런데 중요한 건 이재명이 이런 발언을 한두번 한 게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이 했으며, 이게 그의 지지자들에겐 먹혀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색을 하고 "당신의 정체를 밝혀라"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면 어쩌자는 걸까?
유시민은 검찰을 악마화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악마로 보는 원리주의자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올 2월 그는 법무부 장관 정성호가 "검찰 전체가 다 나쁘다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모욕적 망언"이란 독한 말로 비난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비난받아 마땅한 발언이었을까? 유시민은 5년 전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한 사과문에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다"고 고백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했고, "많이 부끄럽다"고도 했다. 어떤 유시민이 진짜 유시민인가?
지금 나는 이재명을 옹호하면서 유시민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각자 생각하는 틀 또는 소통의 문법이 달라서 이재명-유시민 논쟁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정작 관심을 갖는 건 유시민이 우리 모두에게 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이 9월24일자 칼럼에서 한 다음 말에 주목해보자.
"같은 편이었다가 갈라서면 극도로 미워하게 된다. 인간이 본래 그렇다. 골육상쟁, 동족상잔, 형제의 난이 더 참혹하다.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김민석, 정청래가 맞붙은 8·17 당원대회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구 모임이 깨지고 친인척과 언쟁을 벌인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김민석-정청래 갈등은 이제 이재명-유시민 갈등으로 비화되었고, 이전보다 더 많이 친구 모임이 깨지고 친인척과 언쟁을 벌이는 일이 생겨났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 문제로 말다툼을 벌일 일이 거의 없거나 매우 드물었다. 점잖게 말하자면, 워낙 정치적 동질성이 강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민주당 1당 독재 체제 지역이기 때문이다.
친구 모임에서건 친인척 모임에서건 자연스럽게 보수정당을 비판하는 합창이 이루어지곤 했지만, 그건 생각이 좀 다른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 다수의 횡포였다. 자신들이 늘 다수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채 획일화된 1당 독재 체제에 안주했던 사람들에게 유시민은 벼락같은, 그러나 아름다운 죽비를 때린 셈이다.
친구 모임이 깨지고 친인척과 언쟁을 벌이는 다양성의 축제에선 이견이 살아 숨 쉰다. 이견을 듣는 게 괴로워 깨지거나 싸우는 모임이라면 그 모임의 구성원들은 그간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된 삶을 살아온 것인가! 이걸 깨닫게 해준 은인이 바로 유시민이 아닌가. 게다가 유시민은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자주 분노하고 흥분하는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는 희생을 해가면서까지 우리에게 그 귀한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았던가.
온라인상에서 논쟁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을 히틀러나 나치에 비교하는 발언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고드윈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나는 이걸 원용해 유시민을 '축복'으로 이용하기 위한 '유시민의 법칙'을 제시하고 싶다. "같은 진영 내에서 정치적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받게 된 충격과 상처 때문에 성찰을 하게 된 사람은 다른 진영 사람들과의 정치적 논쟁에 정중하게 임할 가능성이 커진다." 유시민에게 두고두고 감사를 드릴 수 있게끔 제발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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