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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400년 전 선비에게 오늘의 길을 묻다…성주 무흘구곡

2026-10-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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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 서거 400여 년 만에 되묻는 선비정신
성적과 취업 너머 참된 교육의 가치와 공직 책무 환기

지난 4일 경북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 일원에 특별한 가을 여행객들이 모였다. 150여 명의 참가자가 안동·대구MBC 라디오 생방송을 들으며 대가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성주군 제공

지난 4일 경북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 일원에 특별한 가을 여행객들이 모였다. 150여 명의 참가자가 안동·대구MBC 라디오 생방송을 들으며 대가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성주군 제공

한강 정구가 남긴 아홉 굽이의 물길…배움은 자신을 닦는 데서 시작해 세상을 향했다


지난 4일 경북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 일원에 가을 여행객 150여 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라디오 생방송을 들으며 대가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의 이치를 탐구했던 길을 오늘의 여행자들이 다시 걸어본 '무흘구곡 라디엔티어링' 행사였다.


이들이 걸었던 무흘구곡은 단순한 계곡이 아니다. 성주에서 김천으로 이어지는 아홉 굽이의 물길에는 조선 중기 대학자 한강 정구(1543~1620)의 학문과 삶의 철학이 스며 있다.


그렇다면 400여 년 전 한강이 자연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남긴 선비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지난 봄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에 매화꽃이 피어나 고즈넉한 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 한강 정구가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했던 이곳은 오늘날까지 그의 학문과 선비정신을 전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지난 봄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에 매화꽃이 피어나 고즈넉한 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 한강 정구가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했던 이곳은 오늘날까지 그의 학문과 선비정신을 전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배움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향해야 한다


무흘구곡의 첫 번째 굽이인 봉비암 곁에는 회연서원이 자리한다. 정구는 1583년 이곳에 회연초당을 세워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사후 건립된 회연서원은 후학들이 학문을 이어가는 중심 공간이 됐다.


정구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성리학자다. 학문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일과 현실에서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곳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원이라는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서 이어졌던 배움의 정신이다.


정구의 가르침은 한 사람의 학문적 성취에 머물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전해졌고, 다시 후대 학자들에게 이어졌다. 회연서원은 한강학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중요한 거점이 됐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의 성과를 성적과 진학률, 취업률로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정구의 삶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많이 배우는 것과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같은 일인가. 지식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도구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돼야 하는가.


회연서원은 오래된 교육시설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교육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다.


성주 무흘구곡 일대의 거대한 암반 위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 산림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강 정구의 학문과 구곡문화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성주군 제공

성주 무흘구곡 일대의 거대한 암반 위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 산림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강 정구의 학문과 구곡문화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생각하게 한다. 성주군 제공

◆봉황은 날아가고 바위는 남았다


제1곡 봉비암(鳳飛巖)은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았다는 바위다. 깎아지른 암벽 위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그 아래로 대가천의 물이 흐른다.


봉황은 예부터 덕이 높은 인물을 상징했다. 정구가 이 바위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이름에 담긴 상징은 오늘의 여행자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봉황은 날아가도 바위는 그 자리에 남는다.


사람이 누렸던 권세와 명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학문과 정신은 후대에 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구는 학문에만 머문 인물이 아니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며 현실 정치에도 참여했다. 자신을 닦는 일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삶을 오늘의 시각에서 읽으면 공직과 사회적 책임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온다.


어떤 자리에 올랐는가보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가.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졌는가보다 그 권한을 누구를 위해 사용했는가.


봉비암은 말없이 서 있지만, 그 앞에서 떠올리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경북 성주군 무흘구곡의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잔잔한 물 위에 그림처럼 비치고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 한강 정구는 이 일대의 자연을 통해 학문의 이치를 탐구하고 삶의 도리를 되새겼다. 성주군 제공

경북 성주군 무흘구곡의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잔잔한 물 위에 그림처럼 비치고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 한강 정구는 이 일대의 자연을 통해 학문의 이치를 탐구하고 삶의 도리를 되새겼다. 성주군 제공

◆굽이치는 물길,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


제2곡 한강대(寒岡臺)로 이어지는 물길에서는 무흘구곡이 품은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정구는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의 '무이구곡가' 전통을 이어 이곳의 아홉 경승지를 시로 노래했다. 구곡은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하는 공간인 동시에 학문과 수양의 과정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물길은 곧게 뻗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지형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굽이친다고 흐름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늘의 여행자는 그 모습에서 유연함과 원칙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익숙했던 질서가 바뀐다.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아는 일도 중요하다.


정구가 추구했던 수양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세우는 일과 맞닿는다.


물은 굽이쳐도 제 길을 잃지 않는다. 사람의 삶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홉 굽이의 끝에서 근원을 묻다


무흘구곡은 제3곡 무학정과 제4곡 입암을 지나 사인암, 옥류동, 만월담, 와룡암을 거쳐 마지막 제9곡 용추에 이른다.


각각의 경승지는 서로 다른 풍경을 품고 있지만 하나의 물길로 이어져 있다. 특히 마지막 용추를 노래한 시에는 물의 근원과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시작된 여정이 결국 그 물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묻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정구의 학문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손안의 휴대전화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순식간에 답을 얻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보를 많이 안다는 것이 곧 세상을 깊이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 사실인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구가 추구했던 이치의 탐구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배움의 태도다.


지난 4일 경북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 일원에서 열린 2026 무흘구곡 라디엔티어링 행사에 참가한 여행객들이 행사장에 모여 있다. 참가자들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무흘구곡의 역사와 자연을 체험했다. 성주군 제공

지난 4일 경북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 일원에서 열린 '2026 무흘구곡 라디엔티어링' 행사에 참가한 여행객들이 행사장에 모여 있다. 참가자들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무흘구곡의 역사와 자연을 체험했다. 성주군 제공

◆선비정신은 박물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흘구곡의 진정한 가치는 아름다운 풍경에만 있지 않다. 그 풍경을 통해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추구했는지 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선비정신은 옛 복장을 갖춰 입고 한시를 읊는 풍류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줄 아는 성찰,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권한과 지위보다 책임을 중시하는 태도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오늘날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 속 인물이 남긴 사상에서 지금도 의미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일은 문화유산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지난 4일 열린 라디엔티어링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줬다. 참가자들이 옛 선비의 길을 걸으며 역사와 자연을 함께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일회성 행사에 머물게 하지 않는 일이다. 무흘구곡의 풍경뿐 아니라 정구가 남긴 학문과 삶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오래된 건물과 바위를 보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정신이 오늘의 삶에서 다시 의미를 얻을 때 더욱 깊어진다.


대가천의 물은 오늘도 굽이굽이 흐른다. 400여 년 전 한강 정구가 바라보았던 물길이다.


그때의 물은 이미 흘러갔지만, 물길을 따라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의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강 정구가 무흘구곡에 남긴 것은 아홉 개의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다. 배움은 자신을 바꾸고, 그 배움은 다시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선비의 정신이다.


세상이 끊임없이 더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시대. 무흘구곡은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어디까지 왔느냐보다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그리고 그 길에서 무엇을 지키며 살아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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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철

지역의 변화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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