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바이오 생태계 구축
초기 연구부터 기업 성장까지 후속투자 지원
25만달러 연구자 유치, 40억달러 기업으로
NCBiotech는 대학의 연구와 기술개발부터 기업 창업·성장까지 지원하며 지역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NCBiotech 전경. NCBiotech 제공
최근 주식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코스피 시대'가 남긴 변화는 분명하다.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자본이 몰리면서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산업에 대한 기대도 이어지고 있다.
자본시장이 커질수록 지역 기업이 성장자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구경북이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은 연구개발(R&D)부터 제품화와 임상, 사업화까지 오랜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는 이 같은 구조를 40년 넘게 만들어왔다. 대학의 연구와 인재에 초기 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기업의 창업과 민간투자로 연결했다. 그 중심에는 1984년 설립된 North Carolina Biotechnology Center(이하 NCBiotech)가 있다.
1984년 설립된 NCBiotech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생명과학 산업 육성을 담당하는 기술기반 경제개발기관이다. 사진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위치한 NCBiotech 본부 전경. NCBiotech 제공
◆바이오 키우는 대구경북, 투자·인재 '연결' 과제
대구경북은 바이오·헬스케어를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지난 17일 대구시는 로봇과 바이오·헬스케어를 중심으로 한 '지역거점 인공지능전환(AX) 혁신 기술개발'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2030년까지 총 4천207억원이 투입된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는 AI 기반 의료기기 생산시스템 개발 등 10개 연구개발 과제를 추진한다.
경북은 바이오산업을 이끌 인재 양성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15일 경북도는 영남대, 경운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경일대 등 5개 대학과 '경북 전략산업 앵커대학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이 가운데 대구가톨릭대·대구대·경일대는 바이오 융합전공을 공동 운영해 1만명의 바이오 인재를 키울 계획이다. 경북도와 대학은 AI와 미래항공, 바이오 등 전략산업 인재 양성에 4년간 600억원을 투입한다.
이처럼 대구경북이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대구경북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바이오산업은 한 차례 지원이나 투자로 기업 성장이 끝나지 않는다. 기술 개발 이후에도 제품화와 임상, 사업화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지역 바이오산업의 과제도 단순히 지원 규모를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초기 투자를 '다음 투자'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공의 연구개발 자금과 초기 투자가 후속 민간투자를 끌어들이고 다시 기업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NCBiotech는 1993년 25만달러를 지원해 유전자치료 연구자 주드 사물스키 박사를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채플힐로 유치했다. 그는 이후 AskBio를 공동 창업했다. 사진은 UNC 채플힐 캠퍼스 전경. 정지윤기자
UNC 채플힐은 노스캐롤라이나 바이오산업의 주요 연구·인재 기반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채플힐 캠퍼스에서 방문객들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정지윤기자
◆25만달러로 유치한 연구자, 40억달러 기업으로
1984년 설립된 NCBiotech의 강점은 '연구부터 기업 성장까지' 이어지는 지원 구조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학 연구와 기술개발, 기업 창업과 성장, 인력 양성까지 지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전자치료 기업 AskBio다. NCBiotech는 1993년 25만달러(약 3억4천만원)를 지원해 피츠버그대에서 연구하던 주드 사물스키(Jude Samulski) 박사를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채플힐로 유치했다.
NCBiotech의 지원은 연구자 유치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물스키 박사의 연구와 기술개발에 추가 자금을 지원했다. 2001년 사물스키 박사가 AskBio를 공동 창업한 뒤에는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초기기업 자금도 공급했다.
AskBio는 이후 벤처캐피털과 기업 투자자들의 후속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했다. 2020년에는 독일 제약사 바이엘(Bayer)에 최대 40억달러(약 5조4천400억원) 규모로 인수됐다. 한 명의 연구자를 지역으로 데려오는 데서 시작된 공공의 투자가 연구와 창업, 민간투자를 거쳐 글로벌 제약사의 대규모 인수까지 이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NCBiotech는 'Funding Gap(자금 공백)'에 주목했다. 연구성과가 나왔더라도 제품과 시장성이 확인되지 않은 초기 단계에서는 민간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NCBiotech는 바로 이 구간에 자금을 공급한다. 민간자본이 들어오기 어려운 초기 단계에서 먼저 위험을 부담한다. 이를 통해 후속 민간투자를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성과는 후속 투자로 나타났다. NCBiotech가 초기기업에 투입한 누적 자금은 약 6천700만달러다. 이후 해당 기업들이 외부에서 유치한 자금은 80억달러를 넘어섰다.
자금만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성공적으로 기업을 창업하고 성장시킨 기업인을 초기기업과 연결하는 'Executive in Residence'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CEO와 COO 등 경영진이 필요한 기업에는 적합한 인재도 연결한다. 또 외부 투자자를 끌어오는 역할도 한다. 미국 각지 투자자들에게 노스캐롤라이나 기업을 소개한다. 글로벌 제약사에는 지역 스타트업의 기술과 기업을 연결한다.
지난 6월 마이크 카네스(Mike Carnes) NCBiotech 초기기업개발 부사장이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지역 자본보다 중요한 건 외부 자본 끌어오는 힘"
지역 안에 충분한 투자자와 자본을 갖추기 어려운 대구경북에는 외부 자본을 어떻게 끌어들일지가 중요하다.
마이크 카네스(Mike Carnes) NCBiotech 초기기업개발 부사장(Vice President, Emerging Company Development)은 "노스캐롤라이나도 실리콘밸리나 보스턴처럼 벤처캐피털이 많은 곳은 아니다. 지난해 노스캐롤라이나 기업들이 약 16억달러의 벤처투자를 유치했지만 대부분은 외부 투자자의 자금이었다"면서 "중요한 질문은 '우리 지역에 돈이 있느냐'가 아니다. '외부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가'다. 투자자들이 대구경북을 주목하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구경북만의 경쟁력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카네스 부사장은 "모든 것은 강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으로 돌아간다"면서 "대구경북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다른 지역에는 없는 강점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바이오 생태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는 혁신(Innovation), 자본(Capital), 인재(Talent), 산업 연결(Industry Connectivity)을 꼽았다. 그는 "좋은 케이크를 만들려면 모든 재료가 필요하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면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기업이 성장할 자금, 회사를 이끌 인재가 필요하다. 기업이 산업 현장의 문제와 수요를 알 수 있도록 산업과 계속 소통하는 구조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다른 지역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경계했다. 카네스 부사장은 "많은 지역이 다른 성공 지역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지만 생태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면서 "노스캐롤라이나는 보스턴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가 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만의 길을 찾았다. 대구경북 역시 자신들만의 색깔을 찾고 이를 중심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대구경북이 바이오·헬스케어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서는 지역내 기관과 기업들이 장기적인 방향을 함께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카네스 부사장은 "대구시와 경북도, 대학, 기업, 투자자들이 장기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면서 "생태계는 몇 년 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생명과학 산업도 그렇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정지윤
영남일보 정지윤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