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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보호실에 갇히기 전 배운 것

2026-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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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1970년대 신문사의 수습기자 교육을 지금 와서 돌아보면 '엽기적'이란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다. 1976년 1월15일 자 한 석간신문 사회면 톱으로 실린 기사를 보자. '초만원 범법(犯法)…엉망 관리' 제목에 '현장 고발, 경찰서 경범 보호실에서 즉결까지' 부제가 달린 기사다. 기자들이 서울 시내 경찰서와 파출소의 경범 보호실과 즉심 대기실, 그리고 즉결 재판소에서 심판받기까지 벌어지는 온갖 상황을 '직접 보고 겪은 듯이' 그려냈다.


사실이 그랬다. 이 기사는 갓 입사한 수습기자 3명이 통금 위반 등 경범죄로 잡혀 겪은 일을 기사화한 것이다. 수습들은 전날 밤 선배들이 사준 입사 축하주를 마시다 통금 직전 시내 곳곳에 '뿌려졌다'. 기자증은 선배들에게 '압수당한' 뒤였다. 2명은 통금 위반으로 바로 검거됐으나 다른 1명은 어린 티가 났는지 훈방됐다. 그는 일부러 파출소 벽에 '실례'를 하고 즉심 보호실에 갇혔다.


이들이 겪은 경찰서 보호실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당시 기사를 보자. "13일 0시 반 서울 Y 경찰서 즉결 보호실. 발 들여놓을 틈 없이 꽉 들어찬 120여 명의 경범 피의자들이 저마다 떠들어대는 가운데 탁하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S 경찰서에선 유리창도 깨진 마룻바닥에 40여 명이 앉지도 못하고 발을 구르며 밤새워 떨었다. 춥다며 담요를 달라고 소리치자 당직 경찰관이 꽥 소리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계속 떠들자 달려가 두어 차례 쥐어박기도 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경찰서 즉결 보호실 모습이다…"


기사에서는 순화했지만, '역한 냄새'는 보호실 구석에 누군가 싸놓은 변과 토사물 냄새다(한 경찰은 다시 잡혀 오지 않겠다며 일부러 변을 남기는 범법자가 있다고 했다). '쥐어박은' 것은 실제론 주먹질 발길질이며 '욕설'은 요즘 불량배도 입에 담지 않는 저급한 욕이다. 기사 속엔 없으나 파출소 벽에 실례해 잡혀간 기자는 우선 뺨부터 맞았다. 무릎을 꿇린 채 발길질도 당했다. 당시 서울 밤 기온은 영하 15℃. 잔뜩 언 데다 뺨을 맞았으니 얼굴이 찢어질 듯했다.


파출소에서 경찰서를 거쳐 즉심 재판에 서기까지 12~20시간이 걸렸다. 새벽 2시경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보내지고 오전 8시쯤 호송차에 태워져 즉심재판소로 넘어갔다. 거기서도 4시간가량을 철창에 갇혀있다 판결을 받는다. 그날 영등포 즉결 재판에서 90분간 245명, 응암동 즉결서는 315명이 2시간 15분 만에 뚝딱 처리됐다. 한 사람당 짧게는 12시간 구금됐다 겨우 30~40초 재판을 받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성희롱, 뇌물, 특실, 특혜와 경찰-구내식당 유착 바가지 등 숱한 비리가 이 기사로 까발려졌다.


이쯤에서 궁금해질 것이다. 인권침해 비리가 만연한 현장을 잠입 취재한 건 알겠다. 그런데 갓 입사한 수습을 꼭 투입해야 했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그날 수습을 경범죄 위반자로 만들어 뺨까지 맞으며 보호실에 갇히도록 한 건 '사건기자 양성 교육'이었다. 경찰 사회에 얼굴이 알려진 선배들은 보호실에 잠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그보다는 수습생에게 기자로서의 첫발을 더 세고 강인하게 내딛게 하려는 단련 교육 성격이 다분했다.


그날 선배들이 입이 닳도록 교육한 건 '현장의 중요성'이었다. 인권침해를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그 현장을 보고 듣고 겪고 생생히 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또 한 가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민주주의 파괴가 무시로 벌어지고 있으나 긴급조치 9호 탓에 제대로 보도를 못 한다. 정보부나 치안본부 대공분실 보안사 등 거대 공권력에서 벌어지는 일엔 접근조차 못 하지만, 경찰서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도 가능하니 거기부터 현장 기사를 쓰자는 거였다.


그러면서 경범 피의자나 심지어 경찰이 하는 말도 무조건 믿지 말라는 교육을 했다. 그때 주입한 구호가 '확인, 또 확인'이었다. 요즘 말로 '팩트 체크' '크로스 체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거듭 확인하라는 주문이었다. 어쭙잖은 정의감이나 설익은 자기 기준으로 현상을 지레 판단하지 말라고도 했다. 시쳇말로 X인지 된장인지 먹어보기 전에는 그게 무엇인지 단정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런 단조(鍛造) 과정을 거쳐 출고한 기사여야만 신성하다는 선배들 얘기는 수습기자들에게 DNA처럼 세포 속 깊이 새겨졌다.


50년이 지나 그 DNA를 다시 깨운 건 영화 '암살자(들)'이다. 아니, 그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다. 정확히는 '영화를 아예 보지도 않았다는 사람'이 패륜, 역사 왜곡으로 지목하며 극장서 내리라 하고, 감독과 배우는 물론 정부 사과까지 주장하는 현실이다. 영화사가 '역사적 사실에 극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라 읍소해도 거짓과 그릇된 사실을 버무려 퍼붓는 비난이 되레 먹히는 현상도 기이한 일이다. 영화를 계기로 '좌우 전쟁'이 격화돼 인신공격이 도를 넘고, 구악의 '별건(別件) 수사'마냥 '먼지 털기'가 횡행하는데도 우리 사회가 이도 저도 못 하며 엉거주춤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경우가 그렇다. 육영수 여사 살해범을 문세광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 측인 양 묘사했다며 영화를 역사 왜곡, 패륜으로 규정할 때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봤다. 감독의 의도가 뭐건 직접 본 사람이 그렇게 느끼고 해석한다면 영화로선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벌어진 일이 황당했다. 주 의원이 직접 유튜브에서 "저는 영화를 안 봤거든요. 보기도 싫어, 토할 것 같아서"라고 말한 것이다. 아니,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내용을 깐다? 그런데 또 딴말이 전해졌다. 주 의원이 "내가 선봉에서 잘 싸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며 "이번 문화전쟁에서 처음으로 우리 자유 우파의 화력을 보여줬다"라고 자랑을 늘어놓은 것이다.


보지도 않은 영화를 좌우 전쟁 도구로 삼아 승리했단 얘기다. 애초부터 현장(영화 장면)이야 어떻건 확인할 것도 없이 싸움부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는 나중에 국감서도 영화를 봤냐는 질문에 "그런 패륜적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정상인가"라며 안 본 걸 자랑처럼 떠벌렸다. 그러면서도 배우에겐 '북한상'이라 인신공격하고 국제영화제에는 심사 대상에 올리지 말라고 전문을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출연진의 인센티브까지 무슨 큰 비리라도 되는 양 폭로한다.


이러니 옛 검찰이 피의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별건에 별건까지 털어 결국 잡아넣던 그 양태를 답습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기자들 용어론 현장도 가지 않고, 주워들은 말을 확인 검증도 안 하고, 제 기준대로 지레 판단해 엉터리 기사로 무조건 까대는 양상이다. 주 의원께 바란다. 영화부터 먼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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