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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그단새] 선배의 필체에 반해서 시작한 문학

2026-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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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대구문학관에서 '100년의 숨결: 대구, 동인'이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근대 이후 대구의 문학 동인 활동을 되짚어보는 자리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것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이다. 문예반은 학교마다 '무슨 무슨 동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몰려다녔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다.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닌 나도 그 흐름에 끼여 문학에 첫발을 디딘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겁도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였다. 우리는 학교 교육의 고정된 틀 너머를 꿈꾸었다. 학생의 본분을 잊었다는 말이 아니다. 교실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일을 동인 활동을 통해 스스로 익히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말과 글과 행동이 우리의 푯대였고 교과서를 밀쳐두고 읽던 책들이 우리의 교재였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필체가 멋진 3학년 선배에게 반했다. 원고지의 네모난 칸을 반듯하게 채우는 정사각형의 글자는 어떤 아우라가 감도는 문기(文氣)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그 선배의 필체를 닮으려고 부단히 연습했고 결국 그 선배의 글씨에 근접하는 필체를 갖게 되었다. 그러자 선배는 자신의 단편소설을 원고지에 옮겨 달라고 부탁했고, 내가 굵은 만년필로 쓴 그 소설은 어느 대학의 문예 공모전에서 당당하게 당선의 영예를 누렸다. 마치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그 선배가 소설가 박덕규였다.


어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박기영이라는 선배를 동성로 입구 심지다방에서 만났다.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문학청년이었다. 내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 선지자처럼 이야기했고, 앞산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월남민 아버지와의 불화를 말할 때마다 침이 튀었다. 장정일이라는 놀라운 시를 쓰는 친구를 우리 앞에 처음 데리고 와 소개한 사람도 그였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학교 밖 강가에서 치기와 열정을 배웠다. 염매시장 막걸릿집에 교복을 입고 스며드는 법도 알았고, 담배 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죽치는 법도 알게 되었다. 서울로 서정주 시인을 찾아가 동인 이름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었다. 김춘수 시인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 이야기, 신동집 시인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는 이야기도 귀를 바짝 세우고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전라남도 어느 섬에서 중학교 교사로 계시던 송수권 시인에게 편지를 썼고, 안동에 계시던 이동순 시인께도 편지를 보냈다. 그때마다 내가 쓴 시를 첨부했는데 답장 속에는 따끔한 회초리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서울과 경주와 밀양과 진주로 몰려다녔다. 백일장에 참가하는 날은 합법적으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문예 공모전에 시를 응모하면 이런 심사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두진 김춘수 김남조 황동규 김현 정현종 박재삼 신경림…. 우리는 대구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이었지만 이미 그때 한국문학의 중심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듯했다.


소설가 박범신이 문학을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했던가. 일찍부터 우리가 읽기와 쓰기의 매혹에 빠져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자유로운 상상력이 권력에 의해 거세당하던 시절에 문학을 붙잡고 있는 일이 어둠을 뚫는 하나의 출구 찾기였을까. 기성세대가 마련해 놓은 길을 고분고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던 반항아들의 허튼 방황이었을까. 대구문학관을 가봐야겠다. 그러면 그 궁금증이 조금 풀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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