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수 경일대 명예교수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다. 동해 위 외로운 섬, 독도는 과연 누구의 삶 속 섬이었을까.
과학적 물꼬를 튼 2010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자료가 있다. 547일간의 상시 관측을 담은 '독도! 울릉도에서는 보인다'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관측된다는 사실을 실증하며 역사적 기록을 과학의 차원으로 이끌었다.
지구가 둥근 점을 고려할 때, 독도에서 울릉도까지 87.4km, 일본 오키제도까지 157.5km라는 거리의 차이는 단순한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섬은 지구 곡면 아래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으로 독도의 최고점(168.5m)은 울릉도의 일정 높이에 오르면 수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오키제도에서는 최고봉인 다이만지산(607m)에 올라도 지구 곡률을 고려하면 독도를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우산과 무릉 두 섬을 기록하면서 "서로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과학적으로 확인된 가시성과 정확히 통한다. 한편 1823년 일본 '오키고기집(隠岐古記集)'에는 맑고 북풍이 강한 가을날 다이만지산에서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어민들의 전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론적으로 직접 관측이 불가능한 거리에서 특정한 기상 조건을 함께 언급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대기의 밀도 차이에 따른 빛의 굴절, 신기루 같은 현상에 의해 아주 드물게 독도가 시야에 들어왔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단지 '보였는가'가 아니다. 누구의 시선에, 얼마나 일상적인 풍경으로 들어와 있었는가이다. 울릉도에서 맑은 날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던 독도와, 157.5km 떨어진 오키의 높은 산에서 특수한 기상 조건이 갖춰져야 비로소 시야에 들어올 수 있었던 독도는 삶 속에서 같은 공간일 수 없다.
지도도 위성항법장치도 없던 시절, 시야에 들어오는 섬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었다. 눈에 담기는 풍경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뱃길을 여는 표지가 된다. 한 공동체의 시야 안에 머물고, 바다 건너 찾아가며 쌓아온 시간은 자연의 섬을 생활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영유권 주장과 더불어 주목할 바는 인류 문화적 삶의 영역이다. 한 공동체의 시야 안에 머물며 수백 년 동안 찾아가 일상을 일궈온 시간. 그 경험의 축적은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어온 지극히 자연스러운 문화적 귀속이다. 독도는 울릉도 사람들에게 막연한 바다 저 너머 존재가 아니었다. 삶의 영역에 자리 잡은 섬이었다.
2010년의 연구는 독도가 울릉도에서 보인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일깨웠다. 이제 울릉도와 오키에서 독도가 보이는 빈도와 조건을 더욱 정밀하게 비교하고, 가시성이 인지와 접근을 거쳐 어떻게 생활권을 이루고, 공간의 귀속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독도가 우리 삶 속에서 차지해온 공간적 위상도 한층 선명해질 것이다.
공간은 국가가 지도 위에 그어놓은 경계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바라보고, 다가가고, 관계를 맺어온 시간에 의해 비로소 형상화된다. 지도 위의 거리는 숫자로 정해지지만, 인간 삶이 깃든 공간은 경험과 기억으로 채워진다. 땅의 역사는 국경선을 긋기 전부터, 그를 품어온 오랜 시간 위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었다.
독도의 날, 오랜 시간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온 인간 삶의 궤적과 공간체계를 온전히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독도를 올바로 기리는 걸음걸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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