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아트뮤지엄(일본 시가현 모리야마시)은 수공간으로 둘러싸인 외부공간 어디에도 안전난간이나 안전턱이 없다. 넓은 보행로와 바닥마감재만으로도 충분한 무장애 공간이 되고 있다. <본인 제공>
'우리(We)에게 기적(Miracle)'을 모토로 유튜브 채널을 열고,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일상을 브이로그로 보여주며 장애인의 현실을 밝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온 유명 장애인 인플루언서가 있다. 그는 '선한 영향력'의 아이콘으로서 장애를 넘어서는 활발한 공개 활동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긍정적인 활동보다 더 큰 관심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선 일이 있었다.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평소 해왔던 방식대로 영상을 공개하면서 의도와 본질을 떠나 결과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사회적 조력과 배려를 어디까지 요구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까지 불러왔다.
그 일련의 사태를 보며 건축설계 업계에서도 오랫동안 표출되지 못한 채 늘 시끄럽기만 했던 고민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장애인을 위해 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결국 모든 사람을 위해 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장애인에 대한 공존의 개념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장애인 편의시설은 그 대상과 범위, 인식의 수준을 넓혀가며 발전해왔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즉 무장애 운동은 건축과 도시환경에서 장애물을 없애는 것에서 출발해 지체장애인과 고령자 등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편의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후 설계 단계에서부터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만들자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최근에는 디자인 포 올(Design for All)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사회 참여와 접근성을 보장하는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일본 고속도로 휴게소의 일반 화장실은 직관적인 사용을 위해 수많은 언어로 안내되어 있다. 본인 제공
오랫동안 설계를 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공간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 편의시설 규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좋은 목적에서 만들어진 규정이지만 건축사들에게는 때때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법과 기준은 계속 늘어나고, 여러 인증 절차는 복잡하며, 설계와 공사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떤 건축가들은 지나친 규정이 건축의 상상력을 막는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규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규정을 맞추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낮은 경사로 하나가 편안한 건물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 하나가 접근하기 쉬운 도시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무장애 공간은 경사로의 폭과 길이, 경사도 같은 체크리스트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을 만들기 전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도시를 그리고 있을까. 장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고 있을까. 어쩌면 체크리스트를 만들기 전에 먼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도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건축설계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의 전공 수업은 대부분 인체가 가진 치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때 배우는 인체는 흔히 '평균적인 사람'이다. 170㎝ 정도의 평균적인 키와 평균적인 몸을 가진, 일상의 움직임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는 그런 평균적인 신체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모차를 미는 부모, 무거운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뛰어다니는 아이들, 길을 찾는 외국인, 목발을 짚은 사람, 무거운 짐을 든 노인까지. 우리가 책에서 보던 혼자 서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신체를 기준으로 시작된 설계의 선입견이 장애인을 '특별한 사람'으로 구분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도시를 보고, 조금 다른 생각으로 공공디자인과 무장애 디자인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도시 안에서 약자가 될 수 있다. 장애를 특정한 사람의 '상태'로만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라보면 도시의 모습은 달라진다. 임산부와 노인,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부모, 무거운 장을 본 어르신,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부모, 길을 찾는 외국인, 폭염 속을 걷는 시민들까지 모두 어느 순간 도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된다.
여행객은 도시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다.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길도, 교통체계도, 건물의 입구도 낯설다. 그들에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때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인과 안내체계는 훌륭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된다. 일본의 지하철에서 색깔과 노선 번호, 픽토그램과 직관적인 화살표를 이용해 길을 찾는 경험은 좋은 사례다. 도시의 언어를 몰라도 도시를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도시는 말을 잘하지 못해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도시는 또 다르게 보인다. 어른들이 설계하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횡단보도와 신호등, 벤치와 난간, 놀이터와 공원의 모든 것이 다른 높이에서 보인다. 좋은 도시는 170㎝의 성인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120㎝의 아이도 쉽게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도시여야 한다.
좋은 도시는 약자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낯설지 않은 도시다. 이미지=생성형 AI(구글 Gemini)
폭염도 이제 도시 속 삶의 장애가 될 수 있다. 대구의 그늘은 유니버셜 공간이다. 대구의 여름에서는 건강한 사람도 약자가 된다. 지난여름 우리가 경험했던 극심한 더위는 날씨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환경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폭염을 견디기 위한 그늘과 벤치, 물과 휴식공간, 짧은 이동거리와 안전한 보행환경 역시 도시가 제공해야 할 공공의 배려가 될 수 있다. 대구가 가져야 할 유니버설 디자인은 휠체어 경사로만이 아니라 그늘까지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도시는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할까. 좋은 도시와 공공공간은 가장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맞은 사람도 일상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도, 도시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좋은 무장애 디자인은 반드시 눈에 띄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경사로는 건축물의 정면을 가로막는 별도의 시설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행로에 녹아들 수 있다. 좋은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도 '장애인용'이라는 이유로 건물의 구석으로 밀어내기보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장애인용과 일반인용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디자인 포 올(Design for All)의 관점에서 보면 일반인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어떤 순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은 건강한 보행자였던 사람이 내일은 목발을 짚을 수도 있고, 익숙하게 지나던 사람이 여행객이 되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어른이었던 우리는 언젠가 노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누군가를 부축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좋은 도시는 약자를 위해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도시다. 내가 약자가 되는 순간에도 내 생활이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도시다. 그래서 유니버설 디자인과 장애인 편의시설은 도면 위에서 경사로의 각도나 폭을 자로 재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한 설계에서 시작된다.
그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규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규정의 목적을 잊지 않는 유연한 행정일 것이다. 결국 무장애 도시란 장애가 없는 도시가 아니라, 누구의 일상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