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한 노인이 나귀의 등에 거꾸로 앉아있다. 나귀는 길을 향하는데, 노인은 등을 돌려 꼬리 쪽을 보고 있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과로도기도(果老倒騎圖)'의 주인공 장과로(張果老)의 모습이다. 그는 훗날 도교의 팔선(八仙) 가운데 하나로 모셔졌지만, 원래는 7~8세기 당나라 때 실존했던 은자였다. 나라의 번영이 한편으로는 절정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녹산의 난이 몰고 올 광풍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모두가 앞만 보고 질주하던 시대, 그는 뒤를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장과로는 흰 나귀를 타고 하루 수만 리를 달렸다. 그리고 쉴 때는 나귀를 종이처럼 접어 상자에 넣고, 다닐 때는 물을 뿜어 되살렸다. 세속의 질서와 권력의 논리를 아예 비껴간 것이다. 접힌 나귀를 누가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권력이 붙잡을 수 없는 자유였다.
수천 리 서쪽, 아나톨리아 고원의 마을 악셰히르에도 나귀를 거꾸로 탄 노인이 있다. 13세기 셀주크 룸 술탄국의 나스레딘 호자다. 그의 이름 아래 여러 시대의 웃음이 모여들었다. 당시 술탄국은 몽골에 무릎을 꿇었고, 그 부조리한 시대를 호자는 웃음으로 건넜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잔칫집에 가자 아무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좋은 외투로 갈아입고 가니 상석에 앉혔다. 그러자 호자는 소매를 수프에 적시며 말했다. "먹어라, 외투야. 대접받은 건 너니까."
마을에 남아있는 무덤마저 그를 닮았다. 입구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만 사방이 다 뚫려있으니 있으나 마나다. 실존했으나 전설이 실존을 삼켜 버린 인물, 그는 튀르키예의 나스레딘 호자이고, 이란의 몰라 나스레딘이며, 신장 위구르의 아판티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는 나스리딘 아판디라는 이름의 동상으로 서 있다. 부조리가 국경을 가리지 않듯, 그것을 웃어넘기는 지혜도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장과로와 나스레딘 호자, 두 노인 사이에는 수백 년의 시간과 수천 리의 공간이 놓여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찌하여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까? 이야기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을 우리는 실크로드라 부른다. 대상 숙소의 모닥불 곁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로 긴 밤을 건넜다. 장과로의 이야기가 몽골 제국 시대에 서쪽으로 건너가 나스레딘에게 스며들었을 가능성이다.
두 노인은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탔다. 말이 정복과 속도의 짐승이라면, 나귀는 가난하고 느린 짐승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꾸로 앉았다. 거꾸로 앉으면 앞은 보이지 않지만 지나온 길이 보인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두 노인은 권력을 꾸짖지 않았다. 웃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웃음 앞에서 권력의 위엄은 조용히 무너졌다. 분노는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만, 해학은 상대의 가면을 벗긴다.
오늘도 우리는 부조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속도가 능력이 되고, 분노가 가장 빨리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우리는 날마다 외투에게 수프를 먹이면서도 그것이 우스운 줄 모른다. 분노는 정당할 때가 많다. 그러나 분노는 쉽게 지치고, 때로 맞서려던 상대를 닮아 간다. 두 노인이 보여주는 태도는 도피가 아니라 부조리를 똑바로 보는 기술이다. 제국들의 길 위에서 끝내 살아남은 것은 왕의 명령이 아니라 나귀를 거꾸로 탄 노인의 웃음이었다. 때로는 거꾸로 앉아야 비로소 길이 보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